금융기본권 연구단 출범…'국민기초금융보장법' 제정 논의 본격화
금융소비자 보호 넘어 접근권·재기권 등 기본권 법제화 추진
김은경, 상담·채무조정 기반 '순차적 기초금융 안전망' 제안
경기도 사례·채무조정 개선안 통해 금융배제 해법 모색
2026-06-11 16:02:58 2026-06-11 16:02:58
[뉴스토마토 이지우 기자] 금융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단순한 대출 공급이나 사후 채무조정이 아닌 '권리 보장' 차원에서 재설계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상담과 채무조정, 보험, 대출, 저축을 하나의 체계로 묶는 '국민기초금융보장법'을 제정해 금융 접근권과 재기권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구상입니다.
 
대출 공급 넘어 권리 보장으로…김은경 '기금융 안전망' 제안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2차 국민의 금융기본권 실현을 위한 정책토론회 및 금융기본권 연구단 출범식'에서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넘어 금융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제도화하는 방안이 논의됐습니다. 토론회는 민병덕·정태호·김현정·김남희·안도걸 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신용회복위원회가 주관했습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은경 신복위 위원장 겸 서민금융진흥원장은 '금융기본권 보장을 위한 국민기초금융보장법 제정 추진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금융을 더 이상 신용과 담보에 따른 사적 계약의 영역으로만 볼 수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금융이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의 필수 인프라가 된 만큼, 제도권 금융에서 배제되는 문제를 권리 보장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김 위원장은 금융기본권의 핵심을 △접근권 △생존권 △자립권 △재기권 △자산형성권 등 5대 권리로 정리했습니다. △소득·신용도와 관계없이 금융서비스에 정당하게 접근할 권리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권리 △실패를 정리하고 경제활동인구로 복귀할 권리 △금융·고용·복지 복합지원으로 스스로 일어설 권리 △미래를 준비할 자산을 형성할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기초상담·채무조정 △기초보험 △기초대출 △기초저축 등 4대 기금융 체계가 제시됐습니다. 김 위원장은 먼저 채무진단 및 상담을 통해 이용자의 상환능력과 금융지원 필요를 파악한 뒤 채무조정을 진행하고, 이후 보험·대출·저축 지원으로 이어지는 순차적 지원 구조를 제안했습니다.
 
핵심은 '대출부터 공급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김 위원장은 금융 취약계층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지원이 단순한 추가 자금 공급이 아니라 채무 정리와 재기 기반 마련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불법사금융예방대출 이용자의 채무조정 이용 의향이 미이용자보다 높게 나타났다는 분석을 소개하며, "더 빌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채무를 정리하게 해달라는 요구"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초상담·채무조정은 채무 상태를 진단해 상환능력에 맞는 조정 절차로 연결하고, 기초보험은 생활 위험이 다시 부채로 이어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보장을 제공하는 장치입니다. 기초대출과 기초저축은 각각 저금리 장기대출과 자산형성 지원을 통해 금융 접근권과 자립 기반을 보완하는 방식입니다.
 
경기도 사례로 본 금융배제…불법사금융 막을 '극저신용대출 2.0' 제안 
 
두 번째 발제에서는 경기도 사례를 통해 금융배제의 현실이 제시됐습니다. 석희정 경기복지재단 연구위원은 '경기도 사례로 본 금융기본권의 실현' 발제에서 가계부채 확대, 자영업 폐업 증가, 불법사금융 피해 확산 등을 금융기본권 논의의 배경으로 짚었습니다.
 
석 연구위원은 금융배제가 불법사금융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구체적으로 제시했습니다. 경기복지재단 분석에 따르면 불법사금융 피해자의 95.3%는 온라인 대출 플랫폼, 카카오톡·사회관계망서비스(SNS), 문자 광고 등 디지털 경로를 통해 불법사금융에 접근했습니다. 피해자의 평균 신용점수는 350점이었고, 500점 이하가 60.7%를 차지했습니다. 소득 100만원 이하 저소득층은 50.4%, 20~30대는 45.2%였습니다. 이는 불법사금융 문제가 전통적인 사채시장을 넘어 온라인 플랫폼과 비대면 접촉을 통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경기도 극저신용대출 사업도 주요 사례로 소개됐습니다. 경기도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극저신용대출 1.0'을 운영해 3년간 누적 11만415건, 총 1374억원을 지원했습니다. 이 사업은 저신용자에게 긴급 생계자금을 공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지만, 짧은 상환기간과 사후관리 부족, 일회성 예산 의존이라는 한계도 드러났습니다.
 
석 연구위원은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극저신용대출 2.0'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상환기간을 최대 10년으로 늘리는 초장기 분할상환 구조를 도입하고, 금융 지원에 고용·복지 서비스를 결합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즉, 단순 금융상품이 아니라 재기를 위한 통합 지원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석 연구위원은 "국가 개입이 시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실패한 자리를 보완하고 다시 시장으로 복귀시키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밝히며 △보완성 △점진적 복귀 △모럴해저드 방지 △재원 지속성 등 4대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성과 지표도 단기 회수율 중심에서 벗어나 신용회복률, 재취업·자활률, 채무 재발 방지율 등 회생률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채무조정 넘어 재기지원으로…직권면책·복합상담 강화 제안
 
세 번째 발제에서는 채무조정 제도의 개선 방향이 논의됐습니다. 한재준 인하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금융기본권 관점에서 본 채무조정 등 채무자 재기지원방안' 발제에서 채무조정을 단순한 채권·채무 조정이 아니라 금융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절차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교수는 현행 채무조정 제도의 한계로 채권자 동의 전제로 인한 기본권 보호의 공백 구조, 불충분한 생계비 인정, 채무 현황 파악 및 채무조정 신청 안내에 집중된 신복위 채무상담 등을 꼽았습니다. 
 
한 교수는 취약채무자에 대한 직권 면책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특히 소득과 자산이 없는 NINA(No Income, No Asset) 채무자에게는 채권자 동의 없이 법원이나 준사법적 기관이 직권으로 채무를 면책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NINA는 총 채무액 5000만원 이하, 중위소득 40% 이하 또는 6개월 이상 무소득 상태, 순자산 1000만원 이하인 채무자를 말합니다.
 
한 교수는 생계비 인정 기준도 조정 유형에 따라 차등화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자만 조정하는 경우에는 중위소득 70%, 이자와 원금 일부 감면은 중위소득 65%, 원금 대폭 감면은 중위소득 60%, 직권 면책 대상은 중위소득 40% 이하로 연동하는 방식입니다. 장애인·만성질환자의 의료비와 영유아 자녀 양육 가구의 보육비를 별도로 인정하는 방안도 포함됐습니다.
 
채무상담 기능의 확대도 주요 과제로 꼽혔습니다. 한 교수는 신복위의 채무상담이 단순한 채무 현황 파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상담 단계에서 복지지원, 고용지원, 정신건강 위기, 법률지원 필요를 함께 확인하고 관련 기관으로 연결하는 복합지원 허브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날 토론회에서 주최 의원들은 금융기본권 입법 필요성에 공감하며, 금융을 취약계층 지원 정책을 넘어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보편적 인프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국민기초금융보장법을 발의 예정인 민병덕 의원은 "금융은 단지 담보와 신용에 따른 사적 계약의 영역이 아니라, 주거·교육과 마찬가지로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국가가 무조건 보장해야 할 보편적 인프라"라며, "제정법을 통해 민생금융을 시혜성 정책에서 '헌법상 청구권'의 지위로 격상시키겠다"고 말했습니다.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2차 국민의 금융기본권 실현을 위한 정책토론회 및 금융기본권 연구단 출범식'에서 김은경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 겸 서민금융진흥원장(오른쪽 다섯번째)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지우 기자 jw@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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