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게임산업에 있어 인공지능(AI)이 제작 효율을 높이는 도구를 넘어, 창작자의 작업 방식 및 이용자의 플레이 경험을 바꾸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AI가 얼마나 많은 콘텐츠를 생산하기보다는, 창작자가 포기했던 경험이나 시도를 되살리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14일 서울 종로구 청년재단에서는 한국게임정책학회 주관의 '제2회 게임 기자단 정책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AI 시대 게임산업'을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나규봉
NC(036570) AI VARCO사업팀장, 성준식
크래프톤(259960) AI For Game R&D 실장, 고영진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인공지능정책과장, 김명훈 법무법인 율촌 변리사 등이 참석했습니다.
AI가 늘린 게임 수, 창작 증강과는 달라
나규봉 팀장은 AI가 새로운 게임을 더 빠르고 많이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있지만, 공급량 증가가 곧바로 의미 있는 창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스팀에 따르면 지난 2025년 출시작 가운데 약 22%가 AI 사용 사실을 고지했습니다. 스팀이 AI 사용 공개 제도를 도입한 2023년과 비교해 전체 출시작도 약 42%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이용자들의 플레이 시간은 신작보다 기존 게임에 집중됐습니다. 작년 스팀 전체 플레이 시간 가운데 같은 해 출시된 신작이 차지한 비중은 14%에 그쳤습니다. 출시 후 1~7년이 지난 게임은 44%, 출시 8년 이상 된 게임은 40%를 차지했습니다.
나 팀장은 AI가 게임 제작의 문턱을 낮추고 공급을 늘렸지만, 이용자가 선택할 만한 새로운 경험까지 충분히 만들어내지는 못했다는 설명입니다.
나규봉 팀장은 "더 많은 새 게임이 아니라, 해볼 만한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며 AI가 창작에 기여하려면 새로운 이야기와 완성도를 높이는 데 활용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스토리 측면에서는 제작비와 인력이 부족해 시도하지 못했던 개인적면서도 좁은 주제의 이야기를 게임으로 구현할 수 있습니다. 완성도 측면에서는 시간 부족으로 포기했던 구도와 연출, 세부 작업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이날 실제 사례도 공개됐습니다. NC에서는 '리니지M' 배경 원화 제작에 AI 기반 3차원 에셋 도구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작업자가 쿼터 뷰 구도를 여러 각도에서 검토한 뒤 원화 작업을 진행하면서, 기존에는 시간 때문에 포기했던 구도와 세부 표현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중요도가 낮은 등장인물의 대화 장면에 입 모양을 맞추는 작업도 AI로 보완했습니다. 모든 작업을 AI 결과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만든 초안을 기존 작업 과정에 넣어 개발자가 다시 수정하고 완성하는 방식입니다.
나 팀장은 "AI가 벌어준 시간을 더 많이 만드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더 잘 만드는 데 써야 한다"며 "적은 자원을 가진 창작자가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AI의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나규봉 NC AI VARCO사업팀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청년재단에서 한국게임정책학회가 주관한 제2회 게임 기자단 정책 세미나에서 '기술은 창작을 정말 증강시키는가'를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현장서 확대되는 AI 적용 범위
크래프톤은 AI를 실제 라이브 게임 서비스에 적용한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단순히 개발 단계에서 AI를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e스포츠 중계, 부정행위 탐지, 이용자와 함께 플레이하는 AI 동료까지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에는 승률과 이동 경로, 교전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는 AI가 적용됐습니다. AI가 경기 상황을 수치로 제시하면, 중계진은 이를 활용해 경기 초반 이용자들의 장비 수집으로 별다른 교전이 발생하지 않는 구간에도 게임 중심의 해설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승률 예측 AI는 프로 선수들의 경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했습니다. 세 팀이 남은 상황에서 우승팀을 예측하는 성능은 약 88%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최신 대회 전략과 팀별 경기 방식이 달라질 경우 정확도가 낮아질 수 있어 지속적인 보완이 필요합니다.
부정행위 탐지에도 AI가 활용되고 있습니다. 크래프톤은 약 2년간의 연구개발을 거쳐 벽 뒤에 있는 상대의 정보를 확인하는 ESP 등 플레이 패턴 기반 부정행위를 탐지하는 모델을 개발했습니다.
크래프톤은 이용자와 함께 게임을 하는 AI 동료 '엘라'도 실험했습니다. 엘라는 이용자의 음성 명령을 이해하고 아이템을 찾거나 이동·교전 명령을 수행합니다. 게임 내 지식과 은어를 이해하고 이용자와 대화하는 기능도 갖췄습니다.
성준식 실장은 "1000여명을 대상으로 3주간 테스트를 진행, 약 4만판의 플레이 데이터를 확보했다"며 "엘라의 응답은 대부분 0.8초 안에 이뤄졌으며, 응답의 99%는 3초 안에 제공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엘라는 이용자의 컴퓨터에서 구동되는 온디바이스 방식으로 설계돼 게임사가 별도의 AI 토큰 비용을 부담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용자 컴퓨터 성능에 따라 이용이 제한되고 AI 성능에도 상한선이 있다는 점은 과제로 남았습니다.
성준식 크래프톤 AI For Game R&D 실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청년재단에서 한국게임정책학회가 주관한 제2회 게임 기자단 정책 세미나에서 '라이브 서비스에서의 AI: 크래프톤이 만드는 플레이 경험의 진화'를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내년 AI 지원 확대 목표…법적 기준은 과제
정부도 게임사의 AI 전환(AX)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문체부는 올해 중소 게임사와 스타트업 약 500개사를 대상으로 75억원 규모 AX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게임사가 필요한 AI 서비스의 구독료와 관련 교육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이와 별도로 9개 게임을 대상으로 약 30억원 규모의 AI 게임 제작 지원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두 사업을 합친 게임 분야 AI 지원 규모는 약 100억원입니다.
문체부는 내년 예산 확대 의지를 목표로 사업안을 제출했습니다. 다만 예산 심의가 진행 중이어서 구체적인 규모와 사업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고영진 과장은 "중소·스타트업의 AI 활용률을 높이는 기존 지원과 함께, 대형 게임사와 중소 게임사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연구개발 사업도 검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AI 인재 교육과 청년 일자리 문제도 향후 문화 분야 AI 전략에 담을 계획입니다.
법과 제도 정비도 병행됩니다. 문체부는 가칭 'AI 콘텐츠 진흥법' 초안을 마련하고 연내 발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AI 콘텐츠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근거, AI 기본법상 투명성 의무의 콘텐츠 분야 적용, AI 콘텐츠의 정의 등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게임업계가 AI를 활용해 해외에 진출할 때는 국가별 법률 차이도 고려해야 합니다. 김명훈 변리사는 게임 AI의 주요 법적 쟁점으로 퍼블리시티권과 개인정보, 저작권을 꼽았습니다.
AI 사용 사실을 게임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고지할지도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AI 캐릭터의 이름에 표시할지, AI가 대사를 생성할 때마다 알릴지에 따라 이용자 경험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 과장은 "관련 법과 정책이 규제보다 산업 진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게임사가 AI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걸림돌을 줄이되, 창작자와 이용자의 권리를 함께 보호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입니다.
김명훈 법무법인 율촌 변리사(왼쪽부터), 고영진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인공지능정책과장, 나규봉 NC AI VARCO사업팀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청년재단에서 한국게임정책학회가 주관한 '제2회 게임 기자단 정책 세미나'에 참석해 토론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충범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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