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유 기자] "원래 당장 사내대출 받을 생각은 없었는데, 규제한다는 얘기가 나오니까 받을 수 있을 때 미리 받아놔야 하나 싶습니다."
금융당국이 대기업 사내 주택구입자금 대출에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직장인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시중은행보다 낮은 금리로 주택구입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사내대출에 규제가 적용될 경우 대출 한도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인데요. 일부 직장인 사이에서는 규제가 시행되기 전에 사내대출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오고 있습니다.
7대 그룹 사내대출 6370억원…3년 새 두 배
23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대자동차·SK·포스코·한화·롯데·LG·GS 등 7개 그룹 주요 계열사의 사내 주택구입자금 대출 잔액은 올해 8월 말 기준 6370억7000만원으로 집계됐습니다. 2022년 말 3304억7000만원과 비교하면 92.8% 증가한 수치입니다.
연도별로는 2023년 4386억5000만원, 2024년 5782억9000만원, 2025년 6088억4000만원으로 매년 증가했으며 올해도 8월 말 기준 지난해 말보다 282억3000만원 늘었는데요. 은행권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기업이 임직원에게 제공하는 주택구입자금 대출 규모도 꾸준히 늘어난 것입니다.
사내대출의 가장 큰 장점은 금리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입니다. 조사 대상 그룹의 대출금리는 연 0~4.6% 수준으로, 일부 계열사는 무이자 대출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룹별로는 SK가 연 0~3.0%, 현대자동차 1.0~2.7%, 포스코 1.5~2.0%, 한화 0~4.6%, GS 0~3.95%, 롯데 1.0~2.6%, LG 0~2.0%로 나타났습니다.
그룹별 잔액은 현대자동차가 2697억9000만원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 SK 1798억원, 포스코 847억5000만원, 한화 670억6000만원, 롯데 181억8000만원, LG 107억1000만원, GS 67억8000만원 순입니다.
사내대출은 은행권 대출과 비교해 금리 부담이 낮아 주택 구입을 준비하는 직장인들에게 유리한 자금 조달 수단입니다. 특히 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제한된 상황에서는 부족한 주택구입 자금을 마련하는 데 활용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 A씨는 "최근 사내대출 규제 얘기가 들리고 있는데 회사 복지 차원에서 제공하는 대출까지 정부가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은행 대출과 달리 회사가 직원들을 위해 마련한 제도인데, 규제가 적용되면 결국 복지는 없어지고 직원들만 불리해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직장인 B씨는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부족해 사내대출을 알아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규제가 도입되면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이 줄어들 수 있는 만큼 제도가 바뀌기 전에 빨리 이용해야 될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금융당국이 대기업 사내 주택구입자금 대출에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제미나이)
금융당국 DSR 규제 검토…대출 형평성 논란
문제는 일반 금융권 대출과의 형평성 문제입니다.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는 차주의 소득과 기존 부채 등을 고려해 대출 한도가 정해지지만, 기업이 임직원에게 직접 제공하는 사내대출은 금융권과 동일한 DSR 규제를 받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같은 소득을 올리더라도 사내대출을 이용할 수 있는 직장인과 그렇지 않은 직장인 사이에 주택구입자금 조달 여건이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 같은 논란은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제기됐습니다. 송 의원은 일반 국민에게는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적용하면서 기업 임직원의 사내대출에는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습니다. 사내대출에도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DSR을 반영해 동일한 대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금융당국도 규제 적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 부문 종합국정감사에서 사내대출에도 일반 대출과 같은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송 의원의 지적에 "취지에 동감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적용 방식에 대해서는 "방법론적으로 저쪽 부분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지는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 위원장은 삼성의 사내대출 제도를 언급하며 근저당 설정 방식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는데요.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사내대출에 DSR 규제를 연계하는 방안과 관련해 "금융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금융당국은 사내대출을 DSR 규제에 어떻게 반영할지 구체적인 방침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사내대출 자체에 대출 한도 규제를 적용할지, 사내대출 상환액을 금융권 대출의 DSR 산정에 포함할지 등에 따라 직장인들이 받는 영향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사내대출도 일반 금융권 대출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규제 적용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기업별 대출 방식과 담보 설정 여부 등이 다른 만큼 구체적인 적용 방안은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오른쪽)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위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이지유 기자 emailgpt1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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