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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은 멀어도 대가는 한국에 도착한다



출근길 휴대전화 화면에서 무너진 건물과 울부짖는 사람을 본다. 몇 초 뒤 화면을 넘기면 날씨와 주가, 연예 뉴스가 이어진다. 전쟁이 일상이 아닌 사람에게 전쟁은 그렇게 잠깐 보고 지나가는 장면이 되기 쉽다. 우크라이나와 중동, 가자지구, 수단과 미얀마에서 계속되는 전쟁과 무력 충돌도 한국에서는 먼 나라의 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러나 2026년 8월의 현실은 다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5년째로 접어들었고, 미국과 이란의 전쟁은 호르무즈 해협의 원유 수송까지 흔들고 있다. 가자지구에서는 휴전 합의 뒤에도 공습과 포격, 민간인 피해가 계속되고 있으며 수단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국내 피란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총성이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 대가까지 우리에게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는 결국 사람에게 돌아간다. 유엔 인권감시단이 확인한 2026년 상반기 우크라이나 민간인 피해만 사망 1,396명, 부상 7,978명이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37% 늘어난 수치다. 가자지구에서는 거의 전 인구인 약 210만 명이 전체 면적의 절반도 되지 않는 공간에 몰려 살고 있다. 위성 분석으로는 건축물의 약 82%가 손상된 것으로 추정됐다. 수단에서는 2025년 말 기준 910만 명이 자국 안에서 집을 떠난 상태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전쟁과 박해 등으로 강제 이주한 사람은 전 세계 인구 70명 가운데 1명꼴이다. (유엔 우크라이나 인권감시단, 유엔 가자지구 보고서, 유엔난민기구 세계 동향)

하지만 숫자는 한 사람이 잃어버린 삶 전체를 보여주지 못한다. 무너진 집과 문을 닫은 학교, 약이 떨어진 병원, 가족과 헤어진 아이의 시간은 사상자 통계 한 줄로 설명하기 어렵다. 전투가 멈춰도 지뢰와 불발탄은 남고, 끊긴 교육과 생계, 몸과 마음의 상처는 수십 년을 따라간다. 휴전은 피해 복구의 끝이 아니라 겨우 시작일 뿐이다.

이 충격은 한국인의 생활에도 이미 닿아 있다. 전쟁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원유 다섯 배럴 중 한 배럴가량이 지나던 호르무즈 해협의 운항 차질은 에너지 가격과 물류비를 밀어 올렸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우리나라가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해 중동 전쟁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운송 불확실성에 따른 유가 상승이 2026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1.0~1.6%포인트 높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는 확정된 결과가 아닌 시나리오 분석이지만, 전쟁이 주유소에서 끝나지 않고 식품·교통·건설·서비스 가격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로는 충분하다. (KDI 분석, 호르무즈 해협 최신 상황)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는 공급망의 불안도 치명적이다. 항로가 막히면 선박은 돌아가고 운송 기간과 보험료가 늘어난다. 원유와 가스, 나프타 같은 원료 조달이 꼬이면 석유화학부터 자동차와 전자 산업까지 부담이 이어진다. 결국 기업의 비용은 상품 가격, 투자 축소, 고용 불안의 형태로 가정에 돌아온다. 전쟁은 국제정치면에만 실리는 뉴스가 아니라 우리의 장바구니와 일자리 문제다.

안보 측면에서는 더 직접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군이 투입되고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이 깊어지면서 유럽의 전쟁과 한반도 안보는 하나의 선으로 연결됐다. 북한이 전장에서 경험을 쌓고 그 대가로 군사적 지원을 받을 가능성은 한국이 가볍게 볼 수 없는 위험이다. 힘으로 국경과 질서를 바꾸는 일이 용인된다면 그 잘못된 신호는 다른 분쟁 지역에도 전달된다. 여전히 정전 체제 속에 사는 한국에 국제법과 규칙의 붕괴는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2026년 4월 논의)

일각에서는 세계적인 군비 확대가 한국 방위산업의 기회라고 말한다. 방어 능력이 필요한 나라에 정당한 수단을 제공하는 일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전쟁을 수출액과 계약 규모로만 바라보는 태도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무기가 민간인 공격이나 국제인도법 위반에 쓰이지 않는지, 최종 사용자가 누구인지,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는지까지 확인해야 한다. 다른 나라 시민의 죽음을 ‘호재’라는 말로 정리하는 순간 우리가 지켜야 할 기준도 함께 무너진다.

그렇다고 아무 조건 없는 휴전만 외치자는 뜻은 아니다. 누가 전쟁을 시작했고 어떤 국제법을 어겼는지, 민간인 피해에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는 분명히 따져야 한다. 침략을 보상하고 피해국에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하는 합의는 오래갈 수도 없다. 그러나 책임을 규명하는 일과 당장의 죽음을 멈추는 일은 반대되는 선택이 아니다. 민간인 보호와 인도적 통로 확보, 포로와 인질 문제 해결, 휴전 협상, 전쟁범죄 조사와 재발 방지 장치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

한국도 어느 편이 이기는지만 지켜봐서는 안 된다. 피해국의 주권과 국제법을 지지하면서 식량·의료·난민 지원을 늘리고, 협상을 가능하게 하는 다자외교에 힘을 보태야 한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학교와 병원, 주거와 에너지 시설의 복구에도 참여할 수 있다. 동시에 에너지 수입선과 해상 운송로를 다변화해 우리 경제의 충격 흡수력도 높여야 한다. 평화를 위한 외교와 한국을 지키는 준비는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니다.


나는 평화를 막연한 도덕적 구호가 아니라 한국의 생활과 안보를 지키는 현실적인 국익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권력자가 아니라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 하루 생활비가 오른 평범한 시민이 먼저 대가를 치른다. 그리고 그 비용은 국경을 넘어 우리의 식탁과 일자리, 한반도의 안전에도 도착한다.

전쟁을 끝내는 일은 쉽지 않다. 서로 총을 내려놓게 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고, 책임을 묻고 파괴된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종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다른 나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 결국 우리의 평범한 내일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승전 소식이 아니라, 더 이상 죽지 않아도 되는 내일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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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성하기 G · 22시간 전

나비효과네요

전남친 P · 1시간 전

전쟁은 먼 나라의 일이 아니라 결국 우리 경제와 안보, 일상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공감합니다. 특히 평화를 지키는 일이 도덕적인 차원을 넘어 현실적인 국익이라는 말이 와닿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