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하기 거버넌스 8시간 전

한국교회의 위기, 해답은 ‘사랑의 급진성’이다

한국교회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오래됐다. 1990년대부터 교회 성장의 정체가 나타났고, 청년들의 이탈과 교회학교의 쇠퇴, 세속화가 이어졌다. 목회자의 윤리 문제와 대형교회 중심의 성장, 물질주의와 정치적 편향도 끊임없이 지적됐다. 교회가 사회에서 얻는 신뢰 역시 예전 같지 않다.

교회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도 프로그램을 만들고 청년 사역을 강화했다. 교회학교를 개편하고 봉사활동도 늘렸다. 새로운 예배와 문화 프로그램도 시도했다. 그런데도 ‘한국교회가 위기’라는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교회가 작아져서 사람들이 떠나는 것일까. 아니면 교회가 말하는 신앙과 실제 모습 사이의 거리가 커졌기 때문일까.

연세대 김학철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교회의 문제를 교인 수나 성장률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교회가 예수의 가르침을 얼마나 삶으로 보여주느냐에 있다.

기독교에서 사랑만큼 많이 듣는 말도 드물다. 하지만 사랑을 말하는 것과 사랑하며 사는 것은 다르다. 나와 뜻이 맞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실제 교회에서도 이런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같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같은 찬송을 부르면서도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서로를 경계하는 경우가 있다. 선거철이 되면 교회 안에서도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지를 두고 갈등이 생긴다. 장애인이나 이주민을 돕는 일에는 적극적이면서도 정작 교회 안에서 그들을 동등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서툰 모습도 있다. 청년에게 교회의 미래를 말하면서 청년들의 의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사랑에 대해 다시 묻게 된다.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김 교수가 말하는 ‘사랑의 급진성’을 나는 ‘시대를 앞서가는 사랑’이라고 이해한다. 급진적이라는 것은 과격하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경계를 사랑으로 넘어서는 것이다.

한국에 기독교가 전해지던 초기 사무엘 무어 선교사와 박성춘 장로의 이야기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신분질서가 강했던 사회에서 양반과 백정이 한자리에 앉아 예배드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백정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거부하는 반발도 있었다. 그러나 교회가 그 벽을 인정했다면 새로운 공동체는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양반과 백정이 함께 예배드린 것은 예배 방식 하나를 바꾼 일이 아니었다. 사람을 신분으로 구분하던 사회에 교회가 다른 기준을 보여준 일이었다. 그때의 사랑은 당시의 상식보다 앞서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넘어야 할 벽은 무엇일까.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주민과 내국인, 세대와 빈부의 벽일 수 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적으로 만드는 현실도 우리가 넘어야 할 벽이다.

여기서 ‘기독시민’의 의미가 중요해진다. 기독시민은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는 사람에 머물지 않는다. 예배당에서 배운 사랑을 사회에서 살아내는 사람이다. 나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인정하고,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공동체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다.

신앙은 예배시간에만 드러나지 않는다. 교회에서 나온 사람이 직장 동료를 어떻게 대하는지,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 어려운 이웃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이 보인다. 어쩌면 신앙은 예배가 끝난 뒤에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사랑 하나로 교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권위주의와 물질주의, 정치적 편향, 세대 간 단절은 구조와 문화의 변화도 필요하다. 하지만 변화의 출발점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

30년 동안 한국교회는 교회를 살릴 방법을 많이 찾아왔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교회를 어떻게 다시 크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교회가 어떻게 다시 시대를 앞서갈 것인가.

한때 양반과 백정이 함께 예배드리는 것은 낯선 일이었다. 오늘도 우리 앞에는 넘어야 할 벽이 있다. 그 벽을 지키는 것이 익숙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랑이 상식보다 먼저 움직일 때 새로운 길이 열린다.

시대가 사랑을 받아들인 뒤 따라가는 교회가 아니라, 사랑으로 시대보다 한 걸음 먼저 나아가는 교회. 그것이 지금 한국교회에 필요한 ‘사랑의 급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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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친 P · 3시간 전

공감합니다. 결국 교회의 위기는 교인 수보다 사랑을 얼마나 삶으로 보여주느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드네요. 시대보다 한발 앞서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