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요즘 한 번쯤 엔화 환율을 확인하게 된다. 엔화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는 뉴스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6월 말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62엔을 넘어섰고, 7월에는 163엔대까지 오르며 약 40년 만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일본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을 거듭 경고할 정도로 엔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여행객에게는 반가운 소식처럼 보인다. 실제 원·엔 환율도 100엔당 800원대까지 내려가면서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다. 여름 휴가철과 겹치면서 일본이 다시 대표적인 가성비 해외여행지로 주목받는 이유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엔화가 이렇게 싸졌다면 일본 여행은 예전보다 훨씬 저렴해져야 하는 것 아닐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여행비에서 환율의 영향을 직접 받는 것은 현지에서 지출하는 식비나 교통비, 쇼핑비 등이다. 항공권과 호텔 가격은 환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관광객이 몰리면 숙박비가 올라가고, 항공 수요가 늘면 항공권 가격도 높아진다. 엔화가 싸진 만큼 일본 여행 수요가 증가하면 오히려 다른 비용이 올라가 환율 효과를 일부 상쇄할 수 있다.
최근 일본 관광지는 실제로 외국인 관광객 증가라는 변화를 겪고 있다. 엔저는 해외 관광객에게 일본의 물가를 상대적으로 낮게 느끼게 만들고, 일본 현지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난다. 반면 일본인에게는 정반대의 문제가 생긴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일본이 해외에서 물건을 사오는 비용은 높아진다. 원유와 식료품처럼 수입에 의존하는 품목의 가격이 오르면 일본 국민이 체감하는 생활비 부담도 커진다. 엔저가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모든 일본 국민에게 좋은 것은 아닌 이유다. 전문가들도 엔화 약세가 고유가와 결합할 경우 일본의 수입물가와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행을 떠나는 일본인에게도 엔저는 부담이다.
일본 대형 여행사 JTB는 올해 여름 해외여행을 계획한 일본인이 지난해보다 8.8% 감소한 217만 명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엔화 가치가 낮아지면서 해외에서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과 서비스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인에게는 해외여행이 비싸지고, 외국인에게는 일본 여행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지는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셈이다.
이런 현상은 환율이 단순히 '여행 물가를 결정하는 숫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인에게 엔저는 여행과 쇼핑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경제 전체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관광객이 늘어나는 산업에는 호재가 될 수 있지만, 수입물가 상승으로 생활비 부담이 커지는 가정도 생긴다. 일본 정부가 엔저를 마냥 반길 수 없는 이유다.
더 흥미로운 것은 한국과 일본의 입장이 묘하게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인은 엔화가 싸졌다는 이유로 일본 여행을 떠나고, 일본인은 엔화가 약해진 탓에 해외여행을 줄이고 있다. 같은 환율 변화가 한쪽에는 여행의 기회가 되고 다른 쪽에는 여행의 장벽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여행을 계획한다면 '엔화가 얼마나 싸졌는가'만 볼 필요는 없다. 환율이 내려간 만큼 항공권과 숙박비가 올랐는지, 현지 물가가 어떻게 변했는지, 여행객 증가로 관광지 가격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나는 이번 엔저 현상이 단순히 '일본 여행을 싸게 갈 수 있는 기회'라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고 본다. 40년 만에 가까운 수준으로 약해진 엔화는 일본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까지 보여주고 있다. 수출기업과 관광업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수입물가와 생활비 부담을 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환율에는 승자와 패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의 입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같은 숫자가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한국인에게는 싸진 엔화가 여행의 기회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인에게는 같은 엔저가 생활비를 걱정하게 만드는 현실일 수 있다.
엔화가 싸졌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엔저가 누구에게 이익이고 누구에게 부담이 되고 있는지를 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