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죽는 것이 두렵다고 말한다. 그런데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지금, 우리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늙어서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가족에게 짐이 되는 삶을 더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한국 사회가 안락사를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물었던 지난 글에 이어서 도대체 사람들은 왜 자신의 죽음을 미리 생각하기 시작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려고 한다.
한국에서 노년은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부모의 병원 생활과 간병을 경험하는 50대에게 노화는 이미 현실이고, 자신의 노년을 준비하는 60대에게는 바로 눈앞의 미래다. 부모가 오랜 투병 끝에 삶을 마무리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마지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래 사는 것만큼 어떻게 늙을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다. 자녀에게 병원비를 의지하고, 오랜 기간 간병을 받으며, 자신의 일상을 다른 사람의 도움에 맡겨야 하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 뒤에는 “하지만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 삶은 원하지 않는다”라는 결심이 따라붙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변화가 죽음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죽음 이후를 준비하는 방식에서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50대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60대는 ‘죽은 뒤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자연장이나 가족장, 무빈소 장례를 선택하거나 자신의 장례 절차와 방식까지 미리 정해두려는 사람도 있다. 죽음을 가족에게 맡기는 마지막 일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담아 정리해야 할 삶의 한 과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안락사에 대한 관심도 이런 변화와 완전히 무관하지 않다. 장례의 방식에서부터 임종의 방식까지, 삶의 마지막을 가능한 한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고 싶다는 욕구가 조금씩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인 가운데 스위스의 조력사망 단체에 가입하거나 관련 정보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확인되고 있다. 서울신문은 2023년 취재에서 스위스 관련 단체에 가입한 한국인이 약 300명에 이르며, 2016년 이후 조력사망을 선택한 한국인도 최소 10명이라고 보도했다. 이들 가운데는 중증 질환자뿐 아니라 건강할 때부터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숫자보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죽음을 생각하는 이유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견디기 어려운 통증 때문일 수도 있고, 회복할 수 없는 질병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병보다도 오랜 의존과 가족에게 미칠 부담이 더 큰 두려움일 수 있다.
그렇다면 안락사를 둘러싼 논쟁을 단순히 ‘죽을 권리’의 문제로만 볼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죽음보다 의존을 더 두려워하게 되었을까.누 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마지막까지 미리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가 과연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는 것인지도 돌아봐야 한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이야기하기 전에, 늙고 병들어도 누군가에게 짐이 되었다고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있는가. 안락사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바라보는 죽음만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두려워하는 노년의 모습부터 들여다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