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노항래님께 작은 인쇄물 하나를 받았다. 제목은 '조문보'. 얼핏 보면 교회 주보 같다. 그것은 장례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고문도, 감사 인사문도 아니었다. 그 안에는 어머니의 생애가 담겨 있다. 목사의 사모로 살아온 시간, 가족들의 기억, 그리고 남은 이들의 감사가 짧지만 정성스럽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목사의 아들로 자라면서 어려서부터 주보를 만드는 일에 익숙했고 그래서 이번에는 어머니를 보내며 그 익숙한 형식을 빌려 어머니의 삶을 기록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장례를 마무리하는 방식마저도 그에게는 하나의 기록이었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어떤 사람들은 평생 기록하는 삶을 사는 것일까.
노항래를 떠올리면 사람들은 노동운동가, 정치인, 정의당 당무위원 출신, 출판사 대표 같은 이력을 먼저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만난 그는 무엇보다 기록자에 가까웠다. 그는 최근 구로동맹파업 시절 함께 만났던 노동자들의 생애를 담은 전기 시리즈를 출간했다. 세상을 움직인 유명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름 없이 현장을 지키고, 노동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는 그 중 한 권을 건네며, 자신의 출판으로 최근 큰 반향을 얻은 유시민 작가의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가 많은 사람들의 삶을 위로한 것처럼, 자신도 평범한 노동자들의 삶을 기록함으로써 그들의 인생 또한 한 번쯤은 조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출판기념회 역시 단순한 행사라기보다 그들의 생애를 축하하고 위로하는 자리로 만들고 싶어 했다.
생각해 보면 조문보와 노동자 전기 출판은 전혀 다른 일이 아니다. 둘 다 한 사람의 삶을 잊히지 않게 하는 작업이다. 세상은 늘 성공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지만, 그는 오히려 잊힐 가능성이 큰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인다. 어머니의 생애도, 노동자의 생애도 그에게는 기록할 가치가 있는 삶이다.
사실 나는 최근 안락사 문제를 주제로 글을 쓰고 있고, 80대 노인들과 함께 수업하며 그들의 생애 이야기를 듣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사람의 주장과 성취에 주목했다면, 나이가 들수록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한 사람의 생애 자체가 하나의 역사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래서일까. 노항래를 보며 나는 정치인보다 기록자를 먼저 떠올린다. 그리고 기록자란 결국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누군가의 삶을 끝까지 듣고, 정리하고, 남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의 생애를 조문보에 담고, 노동자들의 삶을 책으로 펴내고, 젊은 학생들의 활동을 응원하는 그의 모습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사람은 누구나 기억될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다.
어쩌면 기록이란 죽음에 맞서는 가장 조용한 저항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삶의 이야기는 남는다. 내가 노항래라는 사람을 관심 있게 바라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기록을 통해 사람을 남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서로의 삶을 조금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의 업적보다 그가 남긴 이야기가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결국 한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의 이름이 아니라 그의 삶을 기억하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