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광주의 지인과 얘기 나눌 일이 있었다. 대기업 호남본부 책임자인 그는 놀랍게도 20년 내 광주의 소멸을 걱정하고 있었다. 호남 최대 도시이자 상징인 광주조차 소멸이 걱정된다면 대한민국엔 수도권만 살아남는다는 얘긴가. 광주도 다른 지방 도시들과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미분양 아파트가 쌓이고 20세 전후 젊은이들은 대부분 수도권으로 빠져나가 도시가 휑하다. 이유는 하나다. 취업 기회 때문이다. 수도권으로 가면 취업이 되느냐? 그렇지 않다. 물론 그걸 알면서도 일단 수도권으로 간다. 수도권으로 몰린 젊은이들 대부분은 '취업준비생'이라는 이름의 도시 빈곤층이 되기 십상이다. 고향에서 부모가 보내주는 돈으로 열악하면서도 값은 살벌하게 비싼 집을 얻고 취직하기 위해 매일 고단하다. 고향의 부모는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집 떠난 자식에게 주거비와 식비 등을 부친다. 한계치에 이른 부모들의 출혈 경비다.
운 좋게 취업했다고 치자. 대개는 월 300만~400만원 정도의 소득이 생기지만 그 돈으로 인생을 설계하며 자립 기반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방에 남아 있는 또래의 젊은이들은 심리적 열패감과 싸우며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하늘의 별 따기다. 30대 중반이 넘어가면 취업을 포기하고 칩거하는 은둔자가 되기 쉽다. 그들에게 결혼은 상상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느냐. 눈높이 따지지 말고 무슨 일이라도 하라”고 권유하는 게 맞겠으나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자기 자식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못할 거면서 내가 여기(지방) 남아 있으니 저런 얘기 한다’고 서운하게 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산을 해야 하는 나이에 생산은커녕 은둔형 젊은이가 되어버리니 그 도시의 생산력은 당연히 저하될 수밖에 없고, 지역에 삐까번쩍 새 아파트를 지어봐야 팔리지 않는다. 집은 언제 사는가. 결혼 분가나, 낡은 집 교체나, 이주할 때다. 결혼할 형편이나 상황이 못 되니 분가 요인이 없는데 헌 집이든 새집이든 어떻게 팔리겠는가. 그런데도 건설사들은 집을 짓고 있다. “지어놓으면 어떻게 되겠지. 설마 망하도록 내버려두겠어?”라면서 오늘도 논 가운데 아파트는 올라가고 있다. 논 가운데 아파트가 늘수록 금융기관 부실은 커진다. ‘정부가 팔짱 끼고 있겠느냐, 언젠가는 해결해주겠지…’라는 막연하거나 빼째라 식 기대도 있을 것이다. 과거에 그렇게 해왔기에 그런 기대나 배짱이 생겼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래서는 안 되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우리 모두가 아는 악순환을 정리해 보자. 취업 여부를 떠나 결혼은 후순위로 밀리고, 결혼이 늦어지니 출생률은 떨어지고, 지방이 소멸돼 가니 결혼 가능 인구는 지역에 하나도 안 남는다. 30대 중반인데도 미혼이 많은 것은 만혼이 MZ 세대의 독특한 라이프 트렌드여서가 아니다. 어쩔 수 없어서 생긴 처절하고도 슬픈 자화상이다. MZ라고 왜 보금자리 만들어 가정을 일구고 인생을 설계하고 싶지 않겠는가. 동물원 나들이가 마냥 재미있을 나이도 아닌데 캥거루가 뭐 좋다고 결혼을 미루겠는가.
지역 소멸과 출산 절벽은 동전의 양면이자 동일한 문제다. 정부에는 두 개의 위원회가 있다. 출생률대책위와 지역소멸대책위. 이 두 조직이 각기 움직이면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출생률 저하 원인이 지역 소멸만은 아니지만 핵심 사유이기에 두 문제는 같은 선상에서 종합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지역마다 수십 년째 기업 유치를 외치지만 얼마 전의 ‘증설 반도체공장 유치’ 논란에서 보듯 말싸움으로 그쳐버렸다. 공공 일자리도 한계가 있다. 지금 지방선거로 요란 시끌하다. 지역 소멸 방지 대책, 얼마나 진지하고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는가. 또다시 일회성 슬로건으로 장식되고 있지는 않는가.
지난해 8월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인구감소지역 시장군수구청장 정책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소멸에서 희망으로' 점등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정부가 할 일이 이 지점이다. 말 그대로 특단의 대책을 내놔 지역 소멸 추세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대통령 직할 정책 과제로 ‘지역별 특화산업 유치대책반’을 만들어 임기 중 1호 과제로 완수하는 것은 어떨까. 물론 팀장은 대통령이다. 복지 예산 아무리 많이 늘리고, 주식시장이 신고가를 구가하고, 판교테크노밸리 옆에 제2, 제3을 확장해도 지역이 소멸하면 구조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몇몇 특출난 젊은이들의 개인적 성공으로 사회구조 문제를 본질적으로 고칠 수는 없다. 두 대책위가 따로국밥처럼 돌아가면 '따로 대책'이 되기 십상이다.
사람이 몰려드니 교통-환경-집 문제가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수도권 집중 때문에 몇십 년째 피 같은 돈을 이중 삼중으로 써왔지만 문제는 해결이 안 돼 더 많은 돈을 퍼붓고 있고, 퍼부어야 한다. 수도권 과밀을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앞으로도 '쎄빠지게' 일한 돈 허공에 날리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청년층은 어디에 살든 계속 가난해진다. 수도권 젊은이건 지역 젊은이건 결혼할 사회경제적 요건은 요원하다.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은 진작에 폐기됐어야 한다. 사람을 서울로 보낼 수밖에 없어 서울로 보냈다가 지금 이 절벽에 다다랐다. 말은 제주로 보내야 하는 건 맞는지 모르지만, 사람은 서울로 보낼 일이 없어져야 한다. 사람과 말에 관한 이 오래된 속담을 박물관으로 보내버리는 국가 대업을 ‘실용과 행정 능력의 이재명정부’가 꼭 해내기를 빌고 바란다. 미구의 문제가 아니다. ‘금쪽 같은 내 새끼, 우리 새끼들’은 물론이고, 지금 이곳의 우리가 매일 시달리고 있는 문제다. 대국민업무보고회를 기대한다.
이강윤 정치평론가,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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