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농협개혁, ‘선거 방식’만 바꾼다고 끝나지 않는다
2026-06-05 06:00:00 2026-06-05 06:00:00
농협 개혁이 다시 정치권의 의제가 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자칫하면 본질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을 수 있다. 중앙회장 선출 방식을 간선제에서 조합원 직선제로 바꾸는 문제는 분명 상징성이 크다. 그러나 농협 개혁의 본질은 선거제도 변경 자체가 아니라, 농협이 과연 농민의 조직으로 작동하고 있느냐는 데 있다. 지금 농협에 쏟아지는 불신은 단지 “누가 회장이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농협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는 질문에서 비롯된다.
 
정부가 농협 개혁에 다시 칼을 든 이유는 분명하다. 중앙회 권한 집중, 반복되는 선거 논란, 미흡한 내부통제, 경제 사업의 낮은 체감 성과가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월 관계 부처와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농협개혁추진단을 꾸렸고, 이후 선거제도 손질과 내·외부 통제 강화, 운영 투명성 제고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이어 5월에는 독립 농협감사위원회 신설, 중앙회장 조합원 직선제, 감독권 강화 등을 담은 개혁 방향을 공식화했다.
 
가장 큰 쟁점은 중앙회장 직선제다. 현재 논의의 방향은 약 187만 조합원이 직접 중앙회장을 선출하도록 대표성을 넓히자는 것이다. 이 구상은 ‘소수 조합장의 농협’에서 ‘조합원의 농협’으로 가자는 명분을 갖고 있다. 실제로 농협중앙회도 2026년 5월21일 직선제 수용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감사위원회 신설 등 외부 통제 장치에는 중복 규제를 이유로 사실상 반대했다. 개혁의 상징은 받되, 개혁의 칼날은 피하려는 태도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직선제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폐쇄적 권력구조를 흔들고 조합원 참여를 확대한다는 점에서 분명 진전이다. 문제는 여기서 멈출 경우다. 선거 방식만 바뀌고 권한 구조와 통제 시스템, 사업 운영 방식이 그대로라면 농협은 더 민주적이기는커녕 더 정치적인 조직이 될 수도 있다. 이미 현장에서는 유권자 187만명 규모의 선거가 과열 경쟁과 비용 폭증, 조직 동원, 포퓰리즘 경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조합장 다수는 직선제에 반대 의견을 냈고, 일부에서는 정당 정치가 농협 선거에 침투할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된다.
 
더 큰 문제는 개혁 논의가 지나치게 권력구조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농민이 농협에 바라는 것은 선거 구호가 아니다. 제값 받는 유통 구조, 실질적인 판매 지원, 지역조합의 경쟁력 강화, 고령농 지원, 디지털 농업 대응 같은 현실적 성과다. 농협이 금융과 자산 규모를 키우는 동안 정작 농민은 “농협이 내 삶을 얼마나 바꿨느냐”는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한다면, 그 조직은 이미 존재 이유를 의심받아야 한다. 농협 개혁은 회장 선출 방식의 민주화에 그쳐서는 안 되고, 경제 사업의 성과를 조합원에게 되돌리는 구조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지난달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열린 '강호동 회장 구속수사 촉구 농민 조합원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농협중앙회의 전면적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시스)
 
그렇다고 정부 주도의 외과수술이 능사는 아니다. 농협은 협동조합이다. 국가가 감독할 수는 있어도, 관치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워선 안 된다. 실제로 일부 조합장들은 감독권 확대와 외부 감사기구 신설이 농협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훼손한다고 반발한다. 이 우려 또한 가볍게 넘겨선 안 된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봐주기식 자율’도 버려야 하지만, ‘통제 일변도 개혁’도 경계해야 한다. 협동조합의 자율성과 공공적 책임 사이에서 정교한 균형을 찾는 것이 핵심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직선제를 도입하되 선거비용 상한, 불법 선거 처벌, 조직 동원 차단 장치를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둘째, 감사 기능 강화는 외부 감시만이 아니라 내부 독립성과 전문성 확보를 함께 담아야 한다. 셋째, 지배구조 개편과 함께 경제 사업 혁신을 개혁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농협 개혁의 성패는 회장을 어떻게 뽑느냐가 아니라, 농민이 농협 덕분에 무엇을 얻느냐로 판가름 난다.
 
농협 개혁은 늦었다. 하지만 늦었다고 해서 아무 개혁이나 밀어붙일 수는 없다. 선거제도 개편은 출발점일 뿐 종착점이 아니다. 이번에도 ‘간판만 바꾸는 개혁’에 그친다면 농협은 다시 신뢰를 잃을 것이다. 농민이 주인이라는 말은 구호로는 쉽다. 그 말을 제도와 성과로 증명하는 일, 그것이 지금 농협 개혁이 답해야 할 진짜 과제다.
 
정원호 부산대학교 교수, 한국농식품정책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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