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광주의 한 거리에서 일면식 없는 여고생을 살해한 장윤기(23)의 주거지에서 훼손된 리얼돌(여성의 외형을 실제와 유사하게 본뜬 성인용품)이 다수 발견된 걸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 장윤기의 성적 동기가 개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리얼돌 규제가 다시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사생활의 영역이라는 입장과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해 범죄에까지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부딪치는 겁니다.
2019년 10월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종합국정감사에서 무소속 이용주 의원이 성인용품인 리얼돌을 보여주며 질의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행복추구권'과 리얼돌…대법원이 열어준 수입 길
리얼돌이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는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법원은 이를 '사생활 영역'으로 판단하며 수입을 허용해 왔습니다.
국내에서 리얼돌 수입이 본격적인 쟁점으로 떠오른 건 2017년 인천세관이 리얼돌을 관세법상 '풍속을 해치는 물품'으로 보고 통관을 보류하면서부터입니다. 그러자 수입업자들은 "성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잇따라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 판결을 통해 리얼돌 수입의 법적 근거가 생겼습니다.
특히 2019년 이 사건의 2심 재판부는 리얼돌이 성인 여성의 신체를 재현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자체만으로는 성풍속을 해치는 물품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성기구는 필연적으로 사람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거나 묘사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제작되고 사용된다"며 "성적 행위에 관한 이런 사적이고도 은밀한 영역의 개인적 활동에는 국가가 되도록 간섭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법리는 올해 2월 대법원 판결에서도 재확인됐습니다. 대법원은 한 유통업체가 김포공항세관장을 상대로 낸 수입통관 보류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하며, 일률적인 통관 금지가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봤습니다. 물론 모든 리얼돌의 수입이 허용되는 건 아닙니다. 아동·청소년의 외형을 사실적으로 본뜬 리얼돌에 대해서는 잠재적 성범죄 위험성을 이유로 2021년부터 수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여성의당 소속 회원들이 지난 4월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리얼돌 수입 허용 판결 규탄 긴급기자회견에서 규탄 손피켓을 들고 서 있다. (사진=뉴시스)
여성계 "진짜 문제는 어떤 상상력을 자극하는지"
법원의 수입 허용 판결이 이어지자, 일각에서는 리얼돌 수입·통관을 막을 수 있는 명확한 규제 법안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리얼돌 수입 및 통관 반대에 관한 청원'을 게시한 조모씨도 대법원 판결을 언급하며 "(리얼돌이) 여성의 신체를 사실적으로 재현해 성적 도구로 취급한다"며 "성평등 가치에 어긋나며 여성을 소유물이나 도구로 인식하게 할 위험이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해당 청원은 청원 동의 5만명을 달성해 소관 상임위인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 회부된 상태입니다.
전문가들은 리얼돌에 대해 단순히 기이한 성적 취향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이것이 시장에서 소비되는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실제 인터넷 유통업체에서 리얼돌을 검색하면 '옆집 유민이', '아영이' 같은 한국 여성의 이름이 상품명으로 버젓이 사용되는 실정입니다.
김주희 덕성여대 차미리사교양대학 교수는 "광주 여고생 살인 사건처럼 리얼돌을 단순히 훼손했다는 사실만으로 성범죄자라는 결론을 내리기보다, 리얼돌이 어떤 상품으로 기획되고 유통되는지, 어떤 상상력을 자극하며 판매되고 있는지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그는 "현재 법원이 '실제 여성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기준으로 수입 허가를 판단하는 것은 지나치게 주관적이며 판사의 개별적 기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법원이 주목해야 할 것은 리얼돌의 물리적 외형이 아니라, 업계가 '얼마나 여성과 닮았는지'를 강조하며 성적으로 상품화하고 유통하는 홍보 방식"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리얼돌 논의가 개인의 행복추구권이나 성적 자기결정권에만 집중될 경우 여성 신체의 상품화와 성적 대상화 문제는 소외되기 쉽다"며 "현재는 아동·청소년을 연상시키는 리얼돌에 대해서만 규제가 이뤄지고 있을 뿐, 성인형 리얼돌을 직접 규율하는 법적 기준이 사실상 부재한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부터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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