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상드르 라크루아가 쓴 『알코올과 예술가』(을유문화사刊)를 보면서 맥주의 수호신 이름이 감브리누스라는 걸 새로 알게 됐다. 통상 바쿠스하면 술의 신이어서 다 같은 것인 줄 알았으나 바쿠스는 와인 영역만 관할하는 모양이다. 종교적으로도 와인과 맥주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전통적으로 구분하는 기준이었다는 것도 이 책 때문에 알게 됐다. 『알코올과 예술가』의 첫 장을 넘길 때는 술이란 건 먹고 마시면 그뿐인 걸, 19세기 문학으로 비교 분석을 할 것까지 있을까, 뭐 이리 학구적일 필요 있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두어 장을 넘기면서부터는 이상하리만큼 저며 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잘 썼다. 재미있다. 저자가 지닌 지식의 폭이 엄청나게 넓다. 무릎을 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문학은 술을 다루는 문학과 마약을 다루는 문학으로 구분될 수 있다는 말 같은 것이다. 헉슬리가 LSD에 관해 썼고 앙리 미쇼가 메스칼린(선인장에서 나오는 환각성 물질)에 관해서 썼으며 그 유명한 윌리엄 S. 버로스가 다량의 ‘짬뽕’ 환각제를 경험한 상태에서 소설을 썼는데 이들 작품은 주관적이고 따라서 당연히 관념적인 측면이 강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술을 가지고 쓴 소설이나 문학에는 사회성이 강하게 배어 있다는 것이다. 대단한 통찰이다.
이탈리아 루카 구아다니노의 영화 <퀴어>는 술보다는 약물에 관한 내용이다. 그래서 꽤나 관념적이다.(사진=누리픽쳐스)
이탈리아의 가장 탐미적인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가 만든 <퀴어>(2024)가 딱 그런 영화였다. 영화 속의 윌리엄 S. 버로스(다니엘 크레이그)는 두 가지를 쫓아다닌다. ‘엉덩이가 예쁜’ 남자와 헤로인이다. 또 한 가지를 좇는다. 일종의 영생이다. 죽음에의 유혹 같은 것이다. 버로스는 영화 후반 동성 애인인 유진(드류 스타키)을 꼬드겨 남미로 여행을 간다. 거기에 있는 ‘야헤’라는 환각제를 찾기 위해서이다. 영화는 이 대목부터 뭐가 뭔지, 도무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오리무중이다. 루카 구아다니노가 그만큼 못 만들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 책의 저자 알렉상드르 라크루아의 말대로 마약을 소재로 다루게 되면 문학이든 영화든 그 지독한 관념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준 셈이다. 영화 속에서 마약을 하는 장면은 따라 하고 싶게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은 살짝 나중에 해당 술을 찾아봐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시인 랭보가 친구들에게 초대받아 간 술집 이름이 ‘몹쓸 사람들’이었고 거기서 마신 술이 압생트였다고 하는 식의 얘기 같은 것이다. 나중에 술집을 차리면 저 제목을 써 봄직할 것이다. 압생트는 한국인들이라면 대다수가 그리 즐겨 마시지 않는 술이다. 도수가 45도 이상이다. 원래는 80도가 넘어가는 것도 있다는데 이건 술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녹색 술이다. 허브가 원료이다. 한국 사람이 만약 자신의 최애주로 압생트를 얘기한다면 대체로 ‘재수 없는’, 현학적인 사람인 경우로 간주해도 된다. 19세기 산업혁명기 공장 노동자들이 혹독한 환경을 잊기 위해 마시기 시작한 술이라는 것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술과 재즈와 글쓰기, 또 글쓰기의 속도가 깊은 연관 관계가 있다는 대목에서 버로스와 함께 미국 비트 세대를 풍미했던 잭 케루악을 거론했는데 이 부분도 흥미롭다. 동시에 이건 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술과 글쓰기라니. 술과 재즈에 취해야 글이 더 잘 써지고 빨리 써진다는 얘기는 설마 아니다. 네 가지의 특성이 같다는 것이다. 잭 케루악은 자신의 글쓰기를 ‘밥(bob) 작법’이라 불렀다. 재즈 연주자가 밤마다 클럽에서 즉흥연주를 거듭하다가 자신만의 연주 기법을 이루어 내는 것 같은 방식으로 썼다는 것이다. 연주자가 자신만의 기법에 통달할수록 연주에 속도가 붙는다. 잭 케루악이 그렇게 썼다. 어쩌면 그건 술의 특성도 그렇다. 점점 많이 마시게 되고 속도도 빨라진다. 잭 케루악이 29살에 쓴 소설 『길 위에서』는 1951년 4월, 단 3주 만에 쓴 것이다. 그는 12피트(약 3.66미터)짜리 종이를 계속 이어 붙여 120피트(약 36.6미터)로 만들어서 타자기에 종이를 갈아 끼우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서 한 번에(쉬지 않고 손이 가는 대로 썼다는 의미겠다) 소설을 끝낸 것으로 알려진다. 케루악의 소설이 초고가 대부분인 것이 그런 연유 때문이다.
이 말이 믿기지 않겠지만 케루악의 글쓰기 습성을 시각화한 것이 브라질 월터 살레스(바우테르 살레스)의 영화 <온 더 로드>(2012)이다. 요즘 젊은이 식으로 말하면 한국 개봉 당시 ‘개폭망’한 이 영화는 극 후반에 주인공이 수십 미터의 종이를 휴지처럼 말아서 타자기에 끼운 채 밤낮 구분 없이 며칠이고 계속해서 쓰는 장면이 나온다. 잭 케루악의 ‘밥 작법’을 월터 살레스가 그대로 구현해 낸 장면이다.
영화는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주인공이다. 잭 케루악을 연상케 하는 샐 파라다이스(샘 라일리)와 잭 케루악의 실제 친구 닐 캐시디를 모델로 한 딘 모리아티(가렛 헤드룬드) 그리고 딘의 도발적인 16살 애인 메리루(크리스틴 스튜어트)이다 이들 셋은 덴버와 샌프란시스코, 텍사스와 멕시코시티 같은, 미 서부와 남부, 국경 너머를 자동차로 여행한다. 살 파라다이스와 딘 모리아티는 동성의 연인 관계로 발전하며 메리루와 쓰리섬의 관계를 갖는다. 영화 <온 더 로드>는 잭 케루악의 원작 『길 위에서』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인가를 추적하고 있는 작품이다. 『길 위에서』는 앨런 긴즈버그의 『울부짖음』, 윌리엄 S. 버로스의 『네이키드 런치』와 함께 비트 문학의 3대 대표작 중 하나이다.
소설 『길 위에서』든 영화 <온 더 로드>든 이 대목과 이 장면이 중요하다. 샌프란시스코의 재즈 바에 갔을 때 샐 파라다이스는 친구 딘 모리아티가 춤을 추면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모습을 보고 그에게 반한다. 그러나 딘이 자기 여자 메리루와의 쓰리섬을 제안할 때 별로 달갑지 않아 한다. 샐은 마지못해 응하지만 셋의 잠자리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샐은 딘이 그럴 때마다 고독과 절망을 느끼고 슬프고 암울한 세계에 갇힌 느낌을 받는다. 고독과 절망이야말로 문학과 영화가 그리려 했던 주제이다. 그럼에도 두 남자는 늘 술을 함께 마시는데 술 마시기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다.
영화 <온 더 로드>는 술과 재즈와 글쓰기와 글쓰기 속도에 대한 얘기를 다룬다.(사진=IFC 필름스)
『길 위에서』가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길을 떠도는 (듯한) 젊은이들의 자유와 방황에 대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고독한 실존을 마주한 후에 깨닫게 되는 해방감 같은 것이다. 인간은 실로 자유로울 수 있는가에 대한 잭 케루악식 답변이 들어 있다. 여하튼, 다 필요 없고(!), 실존이든 나발이든 다 집어치우고(!!) 인생의 벽에 부딪혔을 때는 주인공들처럼 술을 마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술은 삶의 필수 요소이다. 월터 살레스 감독의 <온 더 로드>에도 숱하게 술이 나온다. 주인공이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는 싸구려 와인(브랜디를 섞은 포트와인 같은 것. 20도 정도의 술이다. 한국 사람들은 잘 안 마신다)이 나오고 여행길에서는 당연히 맥주가, 멕시코시티에서는 또 당연히 테킬라가 나온다. 엄청들 마셔댄다.
서울역에는 고 박원순 시장 때 만든 ‘서울로 7017’ 길이 있다. 노후화된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대신 만든 보행길이자 공중 정원인데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를 본뜬 것이다. 네덜란드 건축가 위니 마스가 디자인과 조성을 맡아 한 것이다. 이 고가 길 공사가 진행될 때 택시만 타면 당시의 박원순 시장이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역시 좌파는 안 된다며, 쌍욕을 하던 나이 먹은 기사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기사들조차 ‘서울로 7017’을 즐겨 걸어 다닐 것이다. 70은 원래 고가가 만들어졌던 1970년을, 17은 이것이 개조된 2017년을 의미한다고 한다. ‘서울로 7017’의 ‘온 더 로드’에는 양옆에 부티크 호텔들이 있고 길은 결국 그 건물 1층이나 지하에 있는 와인 바, 스낵 바 등에 연결이 돼 있다.
그중 하나가 탭 하우스인 ‘서울리스타’이다. 여기에는 꽤 다양한 맥주들이 있다. 서울의 젊은 직장인들이 애용하는 펍이다. 맥주 한 잔 값은 비싼 편이지만 도수들이 높은 것이 많아 의외로 적게 마시게 된다. 가성비가 나쁘지 않은 편이라는 얘기다. 한국에는 비트 제너레이션다운 세대가 없었으나 대신 다양한 맥주 펍이 이들의 문화를 대변해 왔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알코올과 예술은 깊은 관계가 있고 그 예술은 젊은 세대를 겨냥하고 있거나 겨냥해야 하는 법이다. 술은 취하게 마시되 랭보의 시와 그의 압생트를 생각하면 더 감칠맛이 난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알고 마시면 맥주의 풍미가 더해진다. 삶은 앎의 연속이다. 술도 똑같다. 알면 알수록 오묘하고 깊어진다. 알렉상드르 라크루아가 이 책 알코올과 예술가를 쓴 이유이다. 당신이 모시는 신은 바쿠스인가 감브리누스인가.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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