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정부가 자율주행 관련 예산을 약 12배 가까이 늘리면서 국내 자율주행 기업은 물론 미국과 중국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에게도 기회의 땅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복잡한 도심 데이터와 고도화된 V2X(차량-사물 간 통신) 인프라는 이들의 인공지능(AI) 모델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최고의 ‘테스트베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대한 세금으로 깐 인프라 위에서 미·중 빅테크 기업들만 ‘데이터 무임승차’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13일 오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자율주행 출발 선포식에서 강기정 광주시장과 함께 실증사업 전용 차량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연합)
2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2027년 ‘레벨4’ 완전 자율주행 상용화 공약을 달성하기 위해 전례 없는 규모로 관련 예산을 늘렸습니다. 2027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자율주행 관련 연구개발(R&D) 및 실증 인프라 예산은 올해 731억원에서 12배 이상 급증한 8801억원으로 편성됐습니다.
이는 단순히 연구용 예산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의 판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읽힙니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이 특정 기업의 연구개발 성과를 넘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격상됐다는 평가입니다.
정부가 자율주행 예산을 늘린 것도 국내 기업 육성을 통해 무임승차를 막고 미·중에 이은 ‘3강’에 들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정부는 앞서 지난해 광주광역시를 자율주행 실증 도시로 선정해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한 바 있습니다. 이번 예산 증액을 계기로 실증 지역을 넓혀 국내 기업의 기술 고도화와 상용화 속도를 동시에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입니다.
'강남 심야 서울자율차' 가 운영 중인 모습. (사진=카카오모빌리티)
다만, 업계에서는 해외 빅테크의 국내 데이터 무임승차에 대한 경계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자율주행차가 수집하는 도로·교통·보행 데이터가 그 자체로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만큼, 국내 인프라 위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해외 기업이 별다른 대가 없이 활용하는 구조가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실제로 미·중 빅테크의 국내 진출은 우려 수준이 아니라 이미 도로 위 현실이 됐습니다. 테슬라는 지난 7월 구형 하드웨어(HW3) 차량을 대상으로 한 경량화 버전을 포함해 감독형 ‘완전자율주행(FSD)’을 국내에 출시했습니다. 중국 로보택시 기업 포니AI도 지난달 28일 국내 파트너사 퓨처링크와 전략적 협력 협약을 맺고, 2028년까지 서울에 무인 로보택시 200대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포니AI는 2024년부터 2년간 자사 자율주행 키트를 장착한 현대차 코나 기반 차량으로 서울 강남 일대에서 약 8만7000km를 실증 주행한 바 있습니다.
자율주행차는 카메라뿐 아니라 라이다 등 다양한 센서로 주행 지역 전체를 데이터화하는 만큼, 사실상 돌아다니는 CCTV 이상의 기기로 평가받습니다. 이 때문에 데이터 수집 범위와 정밀도가 기존 교통 인프라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관련 인프라를 누가 주도적으로 구축하고 운영하느냐가 향후 시장 주도권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막대한 세금을 들여 깐 인프라와 국내에서 쌓인 도로·교통 데이터를 정작 국내 기업이 아니라 이미 자본과 기술력을 갖춘 미·중 빅테크가 별다른 대가 없이 가져다 쓰는 구조가 굳어질까 우려된다”며 “이런 ‘데이터 무임승차’를 막기 위해서라도 국내 기업이 실증 단계에서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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