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공공기관 이전과 기능조정을 추진하면서 정책금융기관 개편 논의도 본격화하고 있다. 국책은행의 지방이전 가능성이 거론되는 한편, 유사 기능을 가진 기관들의 통폐합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방이전과 통폐합에는 각각 지역균형발전과 조직 효율화라는 명분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자금이 필요한 곳에 제대로 흘러가고 있느냐다. 정책금융이 정부가 내건 산업·지역 정책과 국정과제를 제대로 뒷받침하고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정책금융은 담보가 부족한 혁신기업이나 회수기간이 긴 첨단산업처럼 민간금융이 선뜻 들어가기 어려운 곳에 자금을 공급하고 위험을 나누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 정책금융은 '얼마나 필요한 곳에 돈을 공급했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돈을 공급했느냐'가 성과의 중심이 되는 경향이 있다.
정부가 정한 공급 목표는 KPI에 반영되고 기관들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움직인다. 공급 규모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면 정작 정책금융이 필요한 기업을 발굴하는 일은 뒤로 밀릴 수 있다. 또 제도상 투융자의 길을 열어놔도 현장이 보수적으로 움직이면 자금은 필요한 곳까지 닿지 않는다. 정책의 방향만큼 실제 집행이 중요한 이유다.
이 문제는 기관 두세 곳을 합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을 합치더라도 공급 중심의 평가방식이 그대로라면 기관 간 경쟁이 내부 사업부 경쟁으로 바뀔 뿐이다.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를 합쳐도 역할과 지원 기준이 불분명하다면 덩치만 큰 기관 하나가 생기는 데 그칠 수 있다.
오히려 더 급한 것은 각 기관의 기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기업이 필요한 대출·보증·투자를 적절한 기관에서 연계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조직 통합보다 서비스 통합을 우선 검토할 수도 있다.
지방이전도 마찬가지다. 산업은행 간판을 부산에 달아놓는다고 지역경제가 저절로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신보는 대구, 기보는 부산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정부는 별도로 비수도권 정책금융 공급 목표를 관리하고 있다. 기관의 주소와 자금의 흐름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통폐합과 지방이전의 방향을 정하려면 기준부터 분명해야 한다. 기관별 경영평가와 KPI가 있고 공급실적도 관리되고 있지만, 정책금융 전체의 성과를 가늠할 공통 지표는 뚜렷하지 않다. 공급 규모를 넘어 실질적인 효과를 판단할 잣대가 필요하다.
결국 정책금융 개혁의 핵심은 '어느 기관을 합칠 것인가'도, '어느 도시로 옮길 것인가'도 아니다. 필요한 곳에 자금이 흐르고 있는가. 정부가 육성하려는 산업과 지역을 제대로 뒷받침하고 있는가. 민간자금의 유입과 기업의 성장을 이끌어내고 있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지 못한 채 기관의 주소만 옮기고 기관 수만 줄인다면, 정책금융 개혁은 여전히 번지수를 잘못 짚은 셈이다.
이지우 정책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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