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SK하이닉스가 미국 자회사 솔리다임의 나스닥 기업공개(IPO) 추진을 중단한 것은 주주 반발과 주가 하락, 금융당국의 규제 압박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됩니다. 자칫 규제 차익으로 비칠 수 있는 국경 밖 중복상장 시도가 논란 끝에 차단됐다는 점은 국내외 자본시장에 상징적인 사례로 각인될 전망입니다.
SK하이닉스는 23일 확정공시를 내고 “해외 종속회사인 솔리다임은 생산능력 확대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자금조달 방안을 검토해 왔으나, 자본시장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프리IPO 및 IPO에 대한 검토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8월 프리IPO 추진 보도에 대한 해명공시 이후 약 두 달 반 만에 상장 카드를 공식 철회한 것입니다.
사 측은 이날 별도 입장문을 통해 “AI 시대 메모리 수요 증가에 대응하려면 미국 내 신규 생산시설 확보가 필요했고, IPO로 외부 자본을 유치하면 연결 현금흐름이 늘어 시설투자와 배당·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여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고 봤다”며 검토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최근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로 반도체 주가가 전반적으로 조정받는 등 자본시장 여건과 주가 흐름을 고려할 때, 현재 IPO가 SK하이닉스와 기존 주주들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부연했습니다.
솔리다임 인수 이후 수년간의 적자를 견뎌낸 주주들은 이제 막 AI 호황기에 진입한 알짜 자회사가 별도 상장될 경우 지분 희석과 모회사 디스카운트가 불가피하다며 강하게 반발해 왔습니다. 특히 최근 잇따른 금융당국의 경고가 단호했습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7일과 19일 국정감사에서 솔리다임 상장이 중복상장 규제 대상이라고 경고한 데 이어, 21일에는 명신산업이 주주 반대로 손자회사 심원아메리카의 나스닥 상장을 포기하자 주가가 하루 만에 17.8% 급등했습니다. 이어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중복상장에 해당한다고 유권해석하며 모회사의 ‘주주보호 5대 의무(주주 영향평가·보호방안 마련·주주소통·이사회 결의·공시)’ 이행이 필요함을 못박았습니다.
이번 결정은 국내 거래소 심사만 피하면 나스닥 등 해외 증시에서 자회사를 우회 상장할 수 있다는 규제 차익이 허용되지 않음을 외국인 투자자와 국내외 시장에 입증했습니다. 외국인들은 이번 철회를 한국 자본시장의 주주권 보호 작동 여부를 확인한 변곡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양현경 iM증권 연구원은 “솔리다임의 미국 상장 철회는 SK하이닉스의 중복상장 관련 우려를 완화할 수 있는 재료”라며 “주주가치 훼손 우려를 수용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중복상장에 따른 할인과 지분 희석에 대한 경계감은 완화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다만 “외부자본 조달 기회가 줄어들고 향후 투자자금 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오른쪽)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위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