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규의 피지컬 AI)로봇의 바늘은 정확해졌지만, 환자의 두려움은 그대로다
제21회/ 최홍규 연구위원(EBS)·미디어학 박사
2026-08-20 13:50:07 2026-08-20 18:38:31
최홍규 연구위원(EBS)/ 미디어학 박사
 
바늘이 살에 닿기도 전에, 몸은 이미 알고 있다. 아플 것이라는 사실을.
 
채혈실 의자에 앉는 사람들의 시선은 예외 없이 바늘 끝을 좇는다. 혈관을 찾는 손끝의 미세한 떨림, 알코올 솜의 서늘함,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짧은 예고 한마디, 따끔합니다.
 
이 익숙한 순서가 최근 네덜란드의 한 병원 채혈실에서는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환자는 팔을 기계 안에 밀어 넣고 시작 버튼을 누른다. 근적외선 카메라가 팔 안쪽을 훑고, 초음파가 혈관의 깊이와 굵기를 재고, 도플러 신호가 정맥과 동맥을 가려낸다. 적합한 혈관이 확인되면 로봇 팔이 정해진 각도와 속도로 스스로 바늘을 꽂는다. 그 옆에는 사람이 없다. 대신 의료진 한 명이 로봇 세 대를 동시에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이 채혈 로봇을 실제 임상 현장에서 검증한 다기관 임상시험 결과가 2026년 8월 학술지에 발표됐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의 의료기기 기업 비테스트로(Vitestro)가 지원하고, 암스테르담대 의학센터(Amsterdam University Medical Center) 등을 포함한 네덜란드 3개 외래 채혈 기관에서 진행된 이 연구는 자율 채혈 로봇 알레타(Aletta)를 이용해 외래환자 1633명을 대상으로 성능, 안전성, 환자 경험을 평가했다.
 
로봇이 혈관을 확인해 시술에 들어간 환자 기준으로, 첫 시도 성공률은 94.5퍼센트였다. 숙련된 채혈 전문가의 평균 성공률 범위 안에 드는 수준이다. 다만 전체 대상자 1743명 중 6퍼센트는 로봇이 애초에 혈관을 찾지 못해 시술조차 이뤄지지 못했고, 이들을 포함한 전체 성공률은 88.5퍼센트였다. 이 낮아진 숫자를 실패로만 읽을 필요는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확신이 서지 않으면 아예 바늘을 대지 않는다는 것, 그 신중함이야말로 사람이 기계에게 가장 먼저 요구하는 안전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더 눈에 띄는 결과는 사람 손으로도 채혈이 까다로웠던 환자군이다. 혈관을 찾기 어렵다고 밝힌 환자에게서도 92.7퍼센트가 성공했다. 이는 기존 문헌에서 보고된 바로, 사람이 손으로 직접 진행하는 외래 채혈 성공률 75에서 85퍼센트보다 높은 수치다. 고령 환자는 93.4퍼센트, 비만 환자는 97.4퍼센트가 성공했다. 부작용은 미주신경성 반응과 실신, 혈종, 일시적 감각이상을 합쳐 0.6퍼센트로 모두 경미했다. 이는 기존 문헌에 보고된 사람 손의 부작용률과 비교해도 낮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안전성이라는 질문 앞에서만큼은, 로봇이 이미 스스로 답을 내놓은 셈이다.
 
적어도 병원의 성능 지표와 경영자의 계산법 안에서 채혈을 담당하는 로봇은 성공적인 수준을 보여준다. 도입 비용을 정당화하고 인력난을 해소할 근거로는 더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정작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성능표 다음 줄, 환자가 느낀 경험이었다.
 
시술 후 설문에서 90퍼센트는 기존 채혈보다 통증이 비슷하거나 덜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다음에도 이 로봇을 쓰겠느냐는 질문에는 반응이 갈렸다. 강하게 선호한다는 응답은 16퍼센트, 선호한다는 응답은 31퍼센트였고, 35퍼센트는 상관없다고 답했으며 18퍼센트는 사람 손을 다시 원했다. 로봇의 채혈 정확도는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환자의 마음까지 온전히 넘어온 것은 아니었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멈춰 서게 된다. 이 연구가 진짜 말하는 것은 로봇의 정확도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채혈 로봇의 정확도는 이제 넘어야 할 산이 아니라 이미 지나온 산이 되었다.
 
남은 질문은 다른 데 있다. 사람은 왜 자신보다 정확한 로봇의 손을 앞에 두고도 선뜻 마음을 내주지 않는가. 채혈이라는 짧은 행위 안에는 통계로 환원되지 않는 감정이 접혀 있다. 바늘이 살을 파고드는 순간의 긴장,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리고 그 불안을 다독여줄 누군가의 존재 같은 것들이다. 로봇은 혈관을 찾는 일에서는 사람을 앞섰지만, 그 옆에서 함께 긴장해 줄 수는 없다. 정확함은 로봇이 채울 수 있는 빈칸이지만, 안심은 관계가 만들어내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답은 로봇을 더 다정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로봇 곁을 지키는 사람의 역할을 바꾸는 데 있다. 지금 로봇 세 대를 동시에 감독하는 의료진이 하는 일은 시술이 아니라 감시에 가깝다. 그 손을 감시에서 위로로 옮겨야 한다. 마트의 셀프 계산대를 지키는 직원이 계산이 아니라 안내와 응대를 맡듯이, 병원의 로봇 곁에도 손이 아니라 마음을 돌보는 사람이 필요하다.
 
정리해 보면,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기술 도입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은 오랫동안 정확도와 속도였다. 그러나 이 연구는 그 기준이 이미 지나간 관문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로봇의 손이 사람의 손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정확해진 지금, 병원이 다음으로 설계해야 할 것은 더 정밀한 센서가 아니라 더 세심한 안심의 절차다.
 
채혈 로봇 곁에 남은 한 사람이 이제 해야 할 일이 바늘을 잡는 손이 아니라 환자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이라는 사실은, 피지컬 AI 시대에 병원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재편되어야 하는지를 뚜렷이 보여준다. 이 원칙은 채혈실에서 멈추지 않는다. 로봇이 잘하는 일과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경계는 수술실에서도, 중환자실에서도, 응급실 접수대에서도 똑같이 새로 그어져야 한다. 정확함을 기계에게 맡긴 병원이 다음으로 투자해야 할 것은 더 빠른 로봇이 아니라, 그 옆을 지킬 사람의 새로운 역할이다.
 
로봇이 잘하는 일은 로봇에게 맡기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사람을 다시 세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병원이 로봇을 들이면서 진짜로 얻어야 할 성과라고, 필자는 믿는다. 정확도를 사고 안심을 잃는다면, 그 도입은 절반의 성공에 지나지 않는다.
 
로봇의 바늘은 이미 정확해졌지만, 두려움은 밀리미터 단위로 정밀해지지 않는다. 병원이 다음으로 채워야 할 빈자리는 정밀함이 아니라, 손을 맞잡아줄 온기다. 그 온기를 채우지 못한다면, 아무리 정확한 바늘도 환자의 오래된 두려움 앞에서는 여전히 낯설 것이다.
 
최홍규 연구위원(EBS)/ 미디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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