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프억빈=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다치고 가족을 잃은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들이 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 진실 규명을 신청합니다. 앞서 하미 마을 피해자들의 신청이 각하된 이후,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진화위 문을 두드리는 건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피해자들의 법률 지원을 맡은 임재성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규명 태스크포스(TF) 단장은 2일 <뉴스토마토>에 "7월 안으로 3기 진화위에 하미 학살과 프억빈 마을 학살 등 두 사건의 피해자들을 대리해 진실 규명을 신청할 예정"이라며 "베트남전 당시 학살 문제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라도 국가의 인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프억빈 마을 사건과 관련해 신청을 넣는 피해자는 학살 당시 7세였던 보티리엠씨와 18세였던 팜티프엉씨입니다.
지난 2월 출범한 3기 진화위에선 진실 규명과 조사 범위가 대폭 확대됐습니다. 진화위는 일제강점기부터 권위주의 정권 시기까지 국가 공권력에 의해 발생한 인권침해와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설립된 독립 조사기관입니다.
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 진실 규명을 신청하는 베트남전 당시 프억빈 마을 학살 사건 피해 생존자 보티리엠씨(왼쪽)와 팜티프엉씨. (사진=뉴스토마토)
1966년 11월9일, 프억빈 마을에서만 73명 숨져
국방부가 1979년 발간한 <파월한국군전사>에 따르면, '용안작전(龍眼作戰)'은 1966년 11월9일부터 27일까지 청룡여단 제2·3·1대대가 차례로 꽝응아이성 선띤현 일대에서 수행한 베트콩 수색·소탕 활동입니다. 프억빈 마을 학살은 작전 첫날인 11월9일 발생했습니다.
팜티프엉씨는 수류탄 파편에 왼쪽 다리와 손을 다쳤습니다. 아버지 후인못(54)씨는 총탄이 폐를 관통한 뒤 후유증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고, 이웃 주민 3명이 총상으로 숨지는 모습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는 지난달 16일 <뉴스토마토>와 만나서도 "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한국군은 왜 그토록 잔인하게 모든 것을 죽였는지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보티리엠씨 역시 한국군에 의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어머니, 한 살배기 여동생, 외사촌 언니 등 5명을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본인도 수류탄 파편에 오른쪽 이마와 다리에 부상을 당했습니다.
두 사람의 증언을 종합하면, 당시 한국군은 방공호에 숨은 주민을 끌어내 총살하거나 방공호 안으로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학교 등 한곳에 주민들을 모아놓고 수류탄을 투척하기도 했고, 집집마다 불도 질렀습니다. 현재 꽝응아이성은 학살 현장을 문화재로 지정했고, 위령비에 새겨진 희생자 73명 가운데 32명은 13세 이하 어린이입니다.
송상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위원장이 지난 3월11일 서울 중구 진화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3기 출범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미 마을 신청은 각하…쟁점은 "외국인 피해자"
관건은 진화위가 프억빈 마을 생존자들의 진실 규명 신청을 받아들일지 여부입니다. 앞서 2022년 4월 하미 마을 학살 피해 생존자 응우옌티탄씨 등 5명도 진화위에 진실 규명을 신청했지만, 진화위는 이듬해 5월 "진실 규명 범위는 외국에서 외국인에 대해 전쟁 중 발생한 사건까지 확대 적용되지 않는다"며 각하했습니다.
이에 불복한 신청인들은 행정소송까지 냈으나 1·2심에서 모두 패소했습니다. 지난해 8월 2심 재판부는 "하미 마을 사건이 대한민국 군인들에 의해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서 안타까운 일임은 부정할 수 없다"면서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과거사정리법) 개정이나 새로운 입법을 통하여 해결할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해당 사건은 현재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심리 중입니다. 전원합의체는 통상 사회적 파장이 크거나 판례 변경이 필요한 사건을 심리합니다. 하미 마을 변호인단은 진화위의 각하 결정은 법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입장입니다. 변호인단에 소속된 임재성 변호사는 "과거사정리법 어디에도 피해자의 국적을 제한하거나 외국인을 배제하라는 문구가 없다"고 했습니다.
임재성 변호사 "가해국 책임 시작은 '사실조사'"
특히 변호인단은 하미 마을 사건의 대법원 판결 결과와 무관하게, 프억빈 마을 신청은 별개로 다뤄질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임 변호사는 "법원이 외국인 피해자를 조사 범위 밖이라고 판단했더라도, 진화위가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서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조사를 개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과거사정리법 제2조(진실규명의 범위) 제1항 제7호엔 진화위가 진실 규명에 착수할 수 있는 유형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서 진화위가 이 법의 목적 달성을 위해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진화위 관계자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가 우리 국민이 아니라는 점이 여전히 쟁점인 걸로 알고 있다"면서도 "3기 위원장은 직권조사에 적극적인 의사를 갖고 있어, 새로 신청이 접수되면 새로운 판단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진화위 전원위원회 재적 위원 과반이 직권조사에 찬성하면 진실 규명 결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진화위의 진실 규명 결정이 갖는 무게감에 대해 임 변호사는 가해국 스스로의 '조사'와 이를 바탕으로 한 '인정'이 지닌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베트남전에 관한 공식 기록엔 민간인 학살은 한 줄도 언급되지 않는다"라면서 "피해자들은 현재 모두 고령이고, 전쟁 범죄 특성상 학살 증거를 피해자에게 직접 수집하라고 하는 건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가해국 책임의 시작은 '사실 조사'다. 진화위 절차를 통해 이 책임을 시작하는 것"이라며 "이런 과정 속에서 학살 사건에 대한 국가의 인정이 이루어진다면 비로소 사회가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기억하고 기록해 나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베트남 프억빈=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