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내부의 당권 투쟁이 점입가경이다. 정당의 지도부를 선출하는 선거는 마땅히 시대적 과제를 진단하고 이를 해결할 노선과 정책이 치열하게 부딪치는 공론의 장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에서 흘러나오는 권력투쟁은 국민에게 깊은 실망감만을 안겨줄 뿐이다. 논쟁의 중심에 시대정신이나 사회경제적 대안은 보이지 않고, 오직 ‘누가 더 적통인가’, ‘누가 진짜 친명인가’를 따지는 해묵은 권력형 정통성 시비만 난무하기 때문이다.
당권주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봉하마을로 향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저마다 ‘노무현 키즈’ 혹은 ‘그의 정신을 이을 유일한 적자’임을 내세우는 상징적 세러모니에만 열중이다. 공허하고 게으르다. 진정으로 노무현을 계승하고 싶다면, 그가 완성하지 못했던 ‘미완의 기획’을 되짚어야 한다. 그가 고뇌했던 지역주의 타파, 국가 균형발전, 그리고 취약계층을 보듬는 복지국가의 비전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오늘날의 시대적 조건과 환경에 맞게 변주하여 새로운 정책과 구체적 대안 노선으로 제시하는 것이 진정한 계승이다. 과거의 유산에 무임승차하려는 태도는 노무현 정신에 대한 모독에 가깝다.
집안싸움으로 날 저무는 사이, 민생 현실은 참담하다. 멈출 줄 모르는 물가 상승과 고질적 전월세난은 중산층을 붕괴시키고 서민들의 삶을 힘겹게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 15~29세 청년 실업률은 7.7%를 기록해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서민들의 비명 소리가 가득하지만,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표방해 온 민주당은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이 사회경제적 개혁 분야에서 보여준 존재감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야당 시절 목소리를 높이던 개혁 입법과 민생 안정 대책은 여당이 된 지금, 당내 주도권 싸움과 계파 간 갈등이라는 늪에 빠져 완전히 실종됐다. 민주당이 국민들을 걱정하지 않는 사이, 국민들이 되레 민주당을 걱정하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자치분권민주지도자회의(KDLC)에서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후보 김민석 전 국무총리, 송영길 의원, 정청래 전 대표(왼쪽부터)가 자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재명정부는 실용 노선에 따라 거시적 국가 도약과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민주당은 단순한 거수기나 방관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실용이라는 이름 아래 정부가 자칫 놓칠 수 있는 과감하고 개혁적인 정책들을 선제적으로 제안하고, 민생의 사각지대를 채우며 정부를 올바른 방향으로 견인하는 든든한 동반자이자 견제자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민주당은 대안을 제시하며 정국을 주도하기는커녕, 당내 권력 분점과 정통성 싸움에 빠져 오히려 정부의 짐이 되고 있다.
과거 인물과 흘러간 유산에 기댄 정치는 결코 국민의 삶을 구하지 못한다. 이제라도 ‘파묘 대전’과 ‘한심한 세리머니’를 멈추고 서민들의 한숨을 직시하길 바란다. 이번 전당대회가 단순한 ‘적통 감별 대회’로 끝난다면 미래는 없다. 전당대회에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실질적 사회경제적 비전과 과감한 민생 개혁 과제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하는 것, 그것만이 실종된 당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고 나아가 정권 연장의 꿈이 이뤄지는 길이다.
오승훈 산업1부장 grantorin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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