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건 꿈이 아니라 계획입니다.”
해남 포레스트수목원(4est 수목원)에서 김건영 대표가 건넨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은퇴 후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카페를 열고 싶다, 여행을 다니고 싶다, 작은 농장을 가꾸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건 언젠가 실행할 수 있는 계획인 데 반해 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커다란 것이라고 했다.
꿈을 꾸었던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꿈보다 계획을 더 많이 이야기하는 사회가 되었다. 취업 계획, 이직 계획, 투자 계획, 은퇴 계획은 넘쳐난다.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보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먼저 고민한다. 꿈보다 계획이 우선이 된 시대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다. 한국 사회는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를 열면 또래들의 성공이 실시간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비교는 쉬워졌고 기대치는 높아졌지만, 성공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실패의 비용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이루기 어려운 꿈보다 당장 실현 가능한 계획을 선택한다.
문제는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계획은 더 자주 수정된다는 데 있다. 취업 계획도, 이직 계획도, 인생 계획도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은 계획 자체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꿈’이다. 방향이 분명한 사람은 계획을 바꿀 수 있지만, 방향이 없는 사람은 작은 실패에도 쉽게 길을 잃는다.
김건영 대표는 20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뒤 600권의 인문학과 경영 서적을 읽으며 자신이 살아갈 방향을 고민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 붕어빵을 물고 걷던 자신의 그림자가 한없이 처량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날 이후 그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100년 후에도 남을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꿈을 품었다. 그리고 전 재산을 들여 고향 해남에 수목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인송문학관 토문재의 박병두 관장도 마찬가지였다. 토문재는 ‘글을 토해내는 집’으로, 평생 품어온 인문주의의 꿈을 위해 자신의 사재를 들여 창작 공간을 만들었다. 수익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작가들이 마음껏 글을 쓰고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남기고 싶었다.
두 사람이 공통으로 이야기한 것은 수목원도 문학관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꿈꾸는 두 사람 모두 지금도 누구보다 고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목원을 찾았을 때, 김 대표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꽃을 심고 있었다. 그의 꿈은 말보다 흙 위에 더 많이 남아 있었다. 박 관장은 지역 활동과 창작실을 관리하며 하루 대부분을 운영에 쏟고 있었다. 사람 냄새 나는 따스한 공간을 꿈꾸었지만, 그에게는 땀 냄새 나는 공간이 되었다. 꿈을 이루면 편해질 것이라는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얼굴에는 지친 사람의 표정보다 꿈을 이야기하는 살아 있는 사람의 눈빛이 있었다.
김건영 대표는 수목원에 만든 징검다리 이야기를 들려줬다. 두 개는 평평하지만 여덟 개는 울퉁불퉁한 돌이다. 좋아하는 일 두 가지를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 여덟 가지를 견뎌야 한다는 가수 박진영의 말을 떠올리며 만들었다고 한다. 결국 꿈은 두 개의 평탄한 돌이 아니라 여덟 개의 울퉁불퉁한 돌을 끝까지 건너게 만드는 힘인지도 모른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100년 후에도 남을 수 있을 하겠다는 꿈을 위해 전 재산을 들여 수목원을 만든 김건영 대표. (사진=송승선)
꿈은 현실을 외면하는 낭만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이 불확실할수록 더 필요한 나침반이다. 계획은 상황에 따라 수정할 수 있지만, 꿈은 방향을 잃지 않게 한다. 꿈이 있어야 계획은 방향을 갖는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더 치밀한 계획이 아닐지도 모른다. 남들과 비교해 조금 더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는 일도 아니다. 이루기 어려워 보여도 끝까지 붙잡고 싶은 꿈을 갖는 일이다. 그 꿈이야말로 울퉁불퉁한 징검다리를 끝내 건너게 하는 힘이다.
송승선 커리어 작가, 『무경계 인간 호모 옴니쿠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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