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가이익센터는 19일 정책보고서 '바다 위의 표준'에서 부유식 SMR을 국제표준과 연료, 선체, 금융, 항만, 공급망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산업으로 분석했습니다. 한국 관련 모델로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의 SMART100 기반 부유식 원전과 한국·덴마크 기반 솔트포스 에너지의 'seaMSR'을 다뤘습니다. 이들 모델이 인허가와 선박 인증에서 보인 진전에 세계적인 조선 역량까지 더해지면서, 한국은 부유식 SMR 시장을 선도할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는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조선·덴마크의 기술·미국의 규제·일본의 금융을 연결하는 4개국 협력 가능성을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부산 기장군 임랑해수욕장 앞 바다 공사현장 뒤로 고리원전 1~4호기가 보이고 있다. 기장군은 0.7GW급 국내 첫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의 건설 후보지로 선정됐다. (사진=뉴시스)
좋은 기술이 반드시 시장을 먼저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원자로라도 선박으로서의 안전성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입항할 수 있는 항만이 없다면 바다 위에서 가동할 수 없다. 연료 공급과 보험, 금융 문제까지 풀리지 않으면 구매자를 찾기도 어렵다.
미국 국가이익센터가 '바다 위의 표준'에서 주목한 것도 이처럼 기술과 상용화 사이에 놓인 간극이다. 미국과 동맹국이 중국의 건조 능력을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어렵다. 그러나 안전과 인허가, 운항에 관한 국제표준을 먼저 정립한다면 시장이 나아갈 방향을 주도할 여지는 남아 있다.
해상 원전에 필요한 새로운 안전 문법
부유식 원전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개발된다. 처음부터 해상용으로 설계하는 방식과 육상 원자로를 해양 환경에 맞게 개조하는 방식이다.
해상 전용 원자로는 파도와 선체의 움직임, 충돌과 침수, 좌초 등의 위험을 처음부터 설계에 반영할 수 있다. 다만 대부분 새로 개발되는 원자로여서 인허가와 운전 경험이 부족하다.
육상 원자로를 활용하면 이미 축적된 기술과 인허가 경험을 이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육상에서 받은 허가가 바다에서도 그대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선박이 침수될 때 배수펌프와 원자로 안전설비가 동시에 비상전력을 요구할 수 있다. 좁은 선체 안에서 방사선 차폐와 단열, 냉각시설과 대피공간도 함께 확보해야 한다. 육상에서는 개별적으로 다뤘던 안전 문제가 바다에서는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맞물리는 것이다.
일본의 원자력 실증선 무쓰호가 이를 보여준다. 1974년 무쓰호의 해상 시운전 중 방사선 차폐재와 단열재를 함께 설치하는 과정에서 생긴 틈이 발견됐다.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유출된 것은 아니었지만 논란이 번지면서 모항이 재입항을 거부했다. 시운전을 마치는 데는 16년이 걸렸다.
부유식 원전은 안전한 원자로와 안전한 선박을 단순히 결합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두 시스템이 해상 환경에서 서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까지 검증해야 비로소 부유식 원전으로서의 안전성이 성립한다. 원자로 규제와 선박 인증을 설계 단계부터 함께 다루는 통합심사가 상용화의 핵심 관문인 이유다.
기술 경쟁보다 더딘 인허가
미국과 동맹국에서는 여러 종류의 부유식 원전이 개발되고 있다. 한국전력기술은 해상 전용 반디 경수로를,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스마트100을 활용한 부유식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캐나다의 프로디지 클린에너지는 뉴스케일과 웨스팅하우스 등과 협력하고 있다. 덴마크와 한국에 기반을 둔 솔트포스 에너지는 해상 전용 용융염원자로인 'seaMSR'을 개발하고 있다.
seaMSR 등 일부 설계는 미국선급협회(ABS)의 원칙승인(AiP)을 받았다. 하지만 원칙승인은 새로운 개념이 기본적인 안전원칙에 부합하는지 살펴보는 예비단계다. 당장 원자로를 가동하거나 선박을 운항할 수 있다는 최종 인증은 아니다.
현재 미국과 동맹국이 개발 중인 부유식 원전 가운데 원자로 인허가와 최종 선박 인증을 모두 받은 설계는 없다. 여러 기업이 앞다퉈 기술을 선보이고 있지만 상업운전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아직 뚜렷한 선두주자는 없는 셈이다.
프로디지 클린에너지와 뉴스케일의 협력 설계, 솔트포스의 seaMSR은 사용 연료와 인허가 진행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상용화 가능성이 비교적 앞선 후보로 꼽힌다. 뉴스케일의 육상용 US460 원자로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표준설계승인을 받았지만 해상용 설계와 선박 인증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seaMSR은 처음부터 해상용으로 설계돼 ABS의 원칙승인을 받았지만 원자로 인허가라는 큰 관문이 남아 있다.
어느 한쪽이 최종 승자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현 단계에서는 특정 노형을 서둘러 선택하기보다 서로 다른 기술이 공통된 안전원칙 아래 경쟁할 수 있도록 인허가 경로를 마련하는 일이 우선이다.
원자로 밖으로 확장되는 표준
어떤 핵연료를 사용하느냐도 수출 가능성을 좌우한다. 혼합산화물 연료는 높은 수준의 보안과 핵물질 관리가 필요하고, 고순도저농축우라늄은 아직 비러시아산 공급망이 충분하지 않다. 반면 농축도 5% 미만의 저농축우라늄은 기존 서방 공급망을 활용할 수 있어 초기 상용화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사용후핵연료와 방사성폐기물을 어디에서 인수하고 관리할지도 함께 정해야 한다.
항만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부유식 원전은 항만에 들어가 접안하고 정비할 수 있어야 한다. 검사 절차와 비상대응계획, 허용 항로와 접안 조건은 원자력 규제기관뿐 아니라 항만과 연안 당국이 함께 결정한다.
미국 해사청이 지난 7월 롱비치항과 원자로 추진 선박의 운영·검사기준을 마련하는 협력각서를 맺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직 구속력 있는 규정은 아니지만 원자력 선박을 실제 항만에서 받아들이기 위한 절차를 마련하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있다.
먼저 상업운전에 성공한 국가가 항만 검사와 비상대응의 선례를 만들면 그 기준이 다른 나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후발주자는 원자로뿐 아니라 선박과 항만 운영방식까지 이미 만들어진 규칙에 맞춰야 할 수 있다.
연료와 항만에 관한 기준이 정리돼야 금융도 움직일 수 있다. 인허가 절차와 최종 인증 가능성이 불분명하면 보험사는 위험을 계산하기 어렵고 금융기관도 자금을 내놓기 어렵다. 여러 국가가 공통으로 인정하는 기준설계가 마련되면 중복 심사의 부담이 줄고 최종 허가 시점도 예측하기 쉬워진다. 표준이라는 공통언어가 생겨야 보험과 사업금융도 뒤따를 수 있다.
제작 역량에서 규칙 설계로
한국이 부유식 원전시장에서 맡을 수 있는 역할도 여기에 있다. 세계적인 조선·해양 기술은 분명한 강점이지만 선체 제작에만 머물면 국제기준을 정하는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원자로와 선박을 함께 설계하고 안전성을 검증하는 단계부터 국내 규제기관과 조선사, 원자로 개발업체가 참여한다면 한국의 경험은 선박 건조를 넘어 인허가와 표준으로 확장될 수 있다. 항만 실증과 비상대응, 선급 인증 역시 한국이 새롭게 축적할 수 있는 자산이다.
아직 어느 국가도 완성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서방의 상용화된 설계가 없는 지금은 한국이 다른 나라의 기준을 받아들이는 데 머물지 않고 바다 위 원전의 규칙을 함께 설계할 수 있는 시기다.
보고서 저자
폴 J. 손더스 미국 국가이익센터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박상길 미국 국가이익센터 원자력에너지 선임연구원·한미에너지포럼 디렉터
미국 국가이익센터
미국 국가이익센터(Center for the National Interest)는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1994년 설립한 초당파적 비영리 정책연구기관이다. 옛 닉슨센터가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미국의 국익에 기반한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외교·안보와 에너지정책 등을 연구하며 국제문제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를 발행한다.
정리 이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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