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식 소형모듈원자로(SMR)는 어느 한 나라가 혼자 완성하기 어려운 산업이다. 원자로 기술만으로는 부족하고 선박 건조와 핵연료 공급, 인허가, 금융, 항만 인프라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부유식 원전 상용화에 필요한 역량은 이미 여러 국가에 나뉘어 있다. 미국 국가이익센터가 '바다 위의 표준'에서 동맹국 협력을 강조하는 이유다.
분산된 강점, 하나의 공급망
미국이 단기간에 중국의 조선 능력을 따라잡는 것은 쉽지 않다. 조선소와 기자재 공급망을 다시 키우려면 많은 시간과 자본이 든다.
그렇다고 미국에 강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와 해안경비대, 미국선급협회(ABS)를 중심으로 국제적 신뢰도가 높은 규제·인증 기반을 갖고 있다. 핵연료 공급과 수출통제, 자본시장과 사업금융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동맹국의 강점은 서로 다른 분야에 분포돼 있다. 한국은 조선소와 해양공학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일본은 핵연료주기와 금융, 사용후핵연료 관리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 건조량으로 중국과 경쟁하기보다 흩어진 역량을 하나의 상용화 체계로 묶는 구상이다.
덴마크와 한국에 기반을 둔 솔트포스 에너지의 해상 전용 용융염원자로 'seaMSR'도 기술적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프로디지 클린에너지와 뉴스케일의 협력 설계와 함께 제시된 기준에 가장 가까운 후보군으로, 해상 전용 설계와 저농축우라늄 연료, 미국선급협회의 원칙승인(AiP)을 갖췄다. 원자로 인허가 절차가 남아 있지만 동맹국 협력의 기술적 선택지를 넓힐 후보로 주목할 만하다.
한·미·일은 지난 7월 제3국 소형모듈원자로 배치를 지원하기 위한 협력각서를 체결했다. 공급망과 금융, 규제 협력을 통해 세 나라의 역량을 해외 SMR 사업에 모으겠다는 내용이다. 부유식 원전에 특화된 협약은 아니지만 동맹국의 산업·금융·규제 수단을 결합할 제도적 기반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덴마크의 해상 원자로 기술이 더해지면 설계의 선택지가 넓어지고, 네 나라의 강점을 잇는 협력모델도 구체화될 수 있다.
공동 실증이 여는 첫 시장
미국선급협회와 미국 국가원자로혁신센터(NRIC), 아이다호국립연구소(INL)는 2050년까지 원자력 전력을 활용하는 부유식 데이터센터 2~9기, 부유식 담수화 설비 2~6기, 원자력 전력을 활용하는 미국 항만 3~5곳의 수요가 생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잠재수요가 실제 주문으로 이어지려면 인허가와 운항기준부터 분명해져야 한다. 구매자는 검증되지 않은 설비를 주문하기 어렵고, 기업은 확정된 주문 없이 첫 상용설비의 위험을 떠안기 어렵다. 표준이 없어 주문이 나오지 않고 주문이 없어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초기시장의 악순환이다.
이런 악순환을 끊으려면 미국이나 동맹국 정부가 초기 호기에 대한 조달을 약속해 첫 수요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지원 방식으로는 미국 에너지부의 첨단원자로 실증사업처럼 공개된 기준에 따른 경쟁, 상당한 규모의 민간 비용 분담, 단계별 성과평가를 결합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첫 호기는 단순한 발전설비가 아니라 후속 시장의 기준을 만드는 실증 무대다. 기술과 산업 역량을 입증하고 원자로 인허가와 선박 인증, 규제 절차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확인한 경험은 이후 사업의 공통기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흩어진 권한을 하나의 추진체계로
미국의 민간 해상 원자력 업무는 원자력규제위원회와 해안경비대, 에너지부, 국무부, 해사청 등에 분산돼 있으며 전용 예산과 책임 주체도 뚜렷하지 않다. 기존 미국 해양혁신센터와 해사청, 미국선급협회의 협력체계 안에 전담 조정기능을 두고 권한과 예산, 사업일정을 부여하자는 권고가 나온 이유다.
기준설계도 필요하다. 처음부터 해상용으로 개발하는 원자로와 육상 원자로를 바다에 맞게 개조하는 설계가 공통된 안전원칙 아래 인허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투명한 기준에 따라 후보를 평가하고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설계승인과 미국선급협회의 선박 인증을 연계하되, 동맹국 규제기관도 심사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목적은 정부가 특정 원자로를 승자로 결정하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설계가 공통된 인허가 경로를 따라 경쟁하고, 한 국가에서 확보한 인증을 다른 동맹국도 인정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있다. 규제기관 간 상호 인정이 자리 잡으면 국가별로 인허가를 반복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보험과 금융의 예측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원자로 밖에서 완성되는 국제표준
국제해사기구(IMO)는 지난해부터 오래된 원자력 상선 안전규정을 현대화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해상 원자력의 안전과 보안, 핵물질 관리, 사고 책임을 다루는 국제협력 구상인 '아틀라스(ATLAS)'를 추진하고 있다.
국제규칙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기업에는 불확실성이지만 한국과 동맹국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공동 실증을 통해 얻은 운용자료가 국제표준 논의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 원자로와 선박, 항만을 함께 운영한 경험이 있어야 안전과 보안, 사고 책임과 인증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연료와 방사성폐기물 관리도 함께 풀어야 한다. 서방 중심의 핵연료 공급망에 해상 원자로의 수요를 반영하고, 용융염원자로에 필요한 연료염 제조 능력도 마련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를 모항이나 정비시설에서 임시 보관하고 처리할 수 있는 경로 역시 사전에 정해져야 한다.
금융과 육상 인프라는 상용화를 뒷받침하는 마지막 축이다. 미국 수출입은행(EXIM)과 국제개발금융공사(DFC)의 지원 대상에 해상 원전을 포함하고, 접안·계류시설과 계통 연결, 원자력 전용 정비시설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인허가와 최종 인증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져야 보험과 금융이 움직이고 구매자도 첫 주문을 결정할 수 있다.
조선 강국을 넘어, 표준을 설계하는 나라로
한국이 부유식 SMR 시장에서 선박 제작만 맡는다면 핵심 설비를 만들면서도 인허가와 연료, 금융과 항만의 기준을 정하는 자리에서는 멀어질 수 있다. 반대로 기준설계와 인허가, 공동 실증과 선급 인증, 제3국 수출 과정에 참여한다면 한국의 조선 경쟁력은 국제표준을 만드는 힘으로 확장될 수 있다.
핵심은 미국이 중국보다 많은 선박을 건조하지 않더라도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한미일 협력을 기반으로 공통 인증체계를 마련하고 책임 있는 배치를 이끌어낸다면 러시아와 중국의 방식과 구별되는 안전·보안·핵비확산 중심의 선택지를 제3국에 제시할 수 있다.
한국이 부유식 원전의 제작 강국을 넘어 세계 해상 원전 시장의 기준을 세우는 나라로 도약할 기회는, 시장이 열린 뒤가 아니라 규칙이 만들어지는 지금에 있다.
미국 국가이익센터(Center for the National Interest)는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1994년 설립한 초당파적 비영리 정책연구기관이다. 옛 닉슨센터가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미국의 국익에 기반한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외교·안보와 에너지정책 등을 연구하며 국제문제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를 발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