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 더위에도 일해야 했던 사람들
2026-08-24 06:00:00 2026-08-24 06:00:00
8월 초 프로야구는 폭염으로 이틀간 전 경기가 취소되는 사상 초유의 일을 겪었다. 프로축구도 일부 경기 시간을 늦췄다. 선수와 관중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런 날씨에도 누군가는 일을 계속해야 했다. 건설 현장의 노동자, 택배와 배달 노동자, 환경미화원, 농촌 노동자들이다. 조선소에서는 햇볕에 달궈진 철판의 복사열까지 견뎌야 하고, 물류센터와 공장에서는 환기가 어려운 공간에 기계가 내뿜는 열까지 더해진다. 에어컨이 있는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으러 잠시 나가는 것조차 힘들었던 날, 누군가에게 그 바깥은 하루 종일 머물러야 하는 일터였다.
 
더위는 더 이상 불쾌한 날씨가 아니라 최악의 경우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재해가 되었다. 올해 8월 초까지 국내 온열질환자는 1900명에 육박했고 14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5년간 온열질환으로 산재를 승인받은 노동자는 243명이고, 그중 24명이 사망했다. 특히 건설업의 피해가 컸다.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체감온도 33도 이상의 폭염에서 작업하는 경우 매 2시간 이내마다 20분 이상의 휴식을 주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체감온도 35도 이상이면 오후 시간대 옥외 작업 중지를 권고하고, 38도 이상의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지면 긴급 작업을 제외한 옥외 작업을 중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문제는 법에 ‘쉬어야 한다’고 정하는 것과 노동자가 실제로 쉴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하루 일을 하지 않으면 하루치 수입이 사라지는 일용직 노동자가 “오늘은 너무 더우니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배달 노동자 역시 쉬는 만큼 수입이 줄어든다. 휴식과 작업중지를 선택한 대가가 현격한 소득 감소라면 그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을까?
 
최근 국회에서는 폭염 등 악천후로 건강 장해가 우려되는 경우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이유로 해고나 징계 등 불이익을 주지 못하게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들이 발의되고 있다. 작업중지에 따른 임금 감소분을 국가와 지자체가 일부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도 제안됐다. 노동계에서는 배달기사 등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에게도 폭염 보호 조치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외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기준도 시행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옥외 작업장의 기온이 섭씨 약 26.7도를 넘으면 그늘을 제공하고 노동자가 필요할 때 더위를 식히기 위한 휴식을 취하게 한다. 고위험 업종에서는 35도 이상이면 노동자를 관찰하고 비상연락 체계를 갖추도록 한다. 창고와 제조업 등 실내 작업장에도 별도 폭염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여름이 예외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인 IPCC는 폭염을 포함한 고온 현상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이제 폭염은 매년 대비해야 할 산업안전 문제가 됐다.
 
그렇다면 문제 해결에 대한 고민도 ‘올여름 특별 대책’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폭염 관련 작업중지 기준을 명확하게 하고, 임금 손실을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기상청이 발표하는 지역 체감온도뿐 아니라 복사열과 습도 등 실제 작업장의 환경을 반영하는 기준 역시 필요하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회원들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운수 노동자 폭염 안전 대책 마련 촉구 순회투쟁 돌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무엇보다 폭염 속에서 일을 멈추는 것을 나약함이나 업무태만으로 생각하지 않는 인식이 필요하다. 프로야구 선수와 관중의 안전을 위해 경기를 취소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건설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하루 공사를 늦추는 것도 당연하다. 태풍이 오면 배를 띄우지 않고 폭설이 내리면 항공편을 취소한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제 폭염에도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오늘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가를.
 
올여름의 지독한 더위도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더위가 지나갔다고 그 속에서 일해야 했던 사람들까지 잊어서는 안 된다. 폭염을 견디며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온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기후위기의 시대, 혹서와 혹한 속에서도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은 우리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기본 조건이 되어야 한다.
 
신의철 변호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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