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현대차의 디자인이 조롱의 대상에서 브랜드 정체성으로 완전히 탈바꿈했습니다. 한때 ‘메기’라는 오명을 썼던 전면부 디자인이 이제는 ‘로보캅’이라는 별칭과 함께 현대차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비슷한 시기 기아 역시 ‘오퍼짓 유나이티드(Opposites United)’라는 독자적인 디자인 철학을 세우며 브랜드 정체성을 재정립했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브랜드지만, 결과적으로는 ‘조화와 융합’이라는 공통된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현대차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 (사진=현대차)
조롱에서 심볼로
현대차 디자인 전환의 분기점은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Seamless Horizon Lamp)’입니다. 좌우를 끊김 없이 가로지르는 이 수평형 램프는 2021년 출시된 스타리아를 시작으로 7세대 그랜저(GN7)에 본격 적용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랜저의 수평형 램프는 SF 영화 속 로봇의 눈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로보캅'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이후 코나 2세대(SX2), 쏘나타 페이스리프트(DN8) 등으로 패밀리룩이 확대되면서 과거 ‘메기’로 불리던 전면부 디자인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효과는 판매 실적으로도 드러납니다. 6세대 그랜저(IG)는 2021년 들어 수요 일부가 제네시스 G80과 기아 K8로 이동하며 월 1만대 판매선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같은 해 7월에는 5247대에 그쳐 국산차 5위권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반면 로보캅 디자인을 앞세운 7세대 그랜저는 2023년 한 해 동안 11만3062대가 팔리며 국산차 전체 모델 중 최다 판매 1위에 올랐습니다.
디 올 뉴 그랜저에 이어 디 올 뉴 코나에도 적용된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 (사진=현대차)
지난 4월 공개돼 5월 출시된 ‘더 뉴 그랜저’에서는 이 흐름이 한층 정교해졌습니다. 후드를 길게 뺀 ‘샤크 노즈’ 형상과 새로운 메쉬 패턴 라디에이터 그릴을 적용해 입체감을 강화했고, 베젤리스 타입의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는 더 얇고 길게 다듬어져 미래지향적 이미지가 배가 됐습니다. 실내는 기존 ‘프리미엄 라운지’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현대차 최초로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 운영체제(AAOS) 기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플레오스 커넥트(Pleos Connect)’를 탑재한 17인치 중앙 디스플레이를 중심에 배치해 하이테크 감성을 더했습니다.
다른 것들의 하나됨
기아는 2021년 3월 ‘오퍼짓 유나이티드’를 새로운 디자인 철학으로 정립했습니다. 빛과 그림자, 혁신과 전통처럼 서로 다른 요소가 만나 새로운 시각을 만든다는 개념으로, △자연과 조화되는 대담함(Bold for Nature) △이유 있는 즐거운 경험(Joy for Reason) △미래를 향한 혁신적 시도(Power to Progress) △인간의 삶을 위한 기술(Technology for Life) △평온 속의 긴장감(Tension for Serenity) 등 다섯 가지 세부 가치로 구성됩니다.
상반된 개념의 '창의적 융합'이란 의미의 오퍼짓 유나이티드는 기아의 첫 전용 전기차인 EV6와 함께 공개된 디자인 철학이다. (사진=현대차그룹)
이 철학이 처음 반영된 EV6는 실적으로 성과를 증명했습니다. 출시 첫해인 2021년 4개월 만에 내수 1만1023대, 수출 1만8459대 등 총 2만9482대가 팔렸고, 이듬해인 2022년에는 내수 2만4852대, 수출 5만8559대로 총 8만3411대까지 늘어나며 판매량이 한 해 만에 세 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해외 평가도 뒤따랐습니다. EV6는 2022년 유럽 올해의 차와 2023년 북미 올해의 차를 잇달아 수상했으며, 심사위원단은 매력적인 디자인과 압도적인 1회 충전 주행가능 거리를 갖춘 차라고 평가했습니다.
외장에서는 서로 대비되는 조형과 면을 한 차체에 결합하는 방식으로 철학을 구현합니다. 더 뉴 레이의 경우 측면에서 넘어오는 펜더의 부드러운 볼륨과 칼로 자른 듯한 프론트 범퍼 면을 함께 배치해, 상반된 두 성질이 공존하는 조형미를 완성했습니다. 실내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EV5는 ‘뜻밖의 대비(Unexpected Contrast)’를 실내 디자인 콘셉트로 내세워, 자연과 조화되는 대담함이라는 철학적 이미지를 소재와 색상 구성으로 풀어냈습니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Imagine)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비전 메타 투리스모(Vision Meta Turismo).(사진=현대차그룹)
기아는 지난 4월 ‘2026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도 ‘상반된 개념의 공명(Resonance of Opposites)’을 주제로 오퍼짓 유나이티드의 방향성을 알렸습니다. 카림 하비브 기아 부사장(글로벌디자인담당)은 “이번 주제는 우리의 여정 속 하나의 이정표”라며 “호기심과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려는 우리의 약속을 담고 있다”고 했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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