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허영인 SPC그룹 회장에 관한 수사 기밀을 빼돌리고 검찰 수사관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징역형을 확정받은 전직 임원이 출소 직후 억대 연봉의 계열사 고문 계약을 맺은 걸로 확인됐습니다. 노조는 회사가 허 회장에게 유리한 진술을 확보하기 위해 위증을 교사하거나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SPC그룹은 퇴임 임원에 대한 통상적 비상근 고문 대우라는 입장입니다.
29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SPC그룹 전직 임원인 A씨는 지난해 9월 SPC GFS 비상근 고문으로 위촉됐습니다. 고문 계약 기간은 올해 8월까지로, 1년간 매달 1000만원씩 총 1억2000만원을 받는 조건입니다. SPC GFS는 허 회장 일가가 최대주주인 삼립의 자회사로, 식자재 유통이 주력 사업입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고문 계약 시점입니다. A씨가 뇌물 공여 등 혐의로 출소한 직후 계약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2020년 9월부터 약 3년간 허 회장의 배임 혐의 등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수사관에게 뒷돈을 주고 수사 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2024년 2월 구속기소됐습니다. 이후 지난해 6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6개월을 확정받고, 그해 8월 만기 출소했습니다. 출소 한 달도 안 돼 억대 고문 계약이 체결된 셈입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지난 4월2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노조 탄압' 의혹 사건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를 두고 노조는 '보은성 위촉'이라고 주장합니다. A씨는 허 회장과 함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공동 피고인이자, 허 회장 지시 여부를 증언할 핵심 인물로 꼽힙니다.
A씨는 파리바게뜨 노조 파괴가 발생했다고 지목된 2022년 당시 SPC그룹에서 홍보 업무를 총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앞서 서병배·황재복 전 SPC그룹 대표 등 임직원들과 주고받은 통화 녹취와 메시지를 정리해 두었는데, 이는 검찰이 허 회장을 기소하는 결정적 증거로 활용됐습니다.
녹취록엔 허 회장이 황 전 대표 등에게 노조 파괴를 지시한 정황, 회사가 노조 파괴에 '노노 갈등'을 이용한 정황 등이 담겼습니다. 재판에서 노조 파괴가 허 회장의 지시라는 걸 부인하던 황 전 대표가 자백으로 돌아선 배경에도 이 녹취록의 존재가 영향을 미친 걸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법정에 선 A씨는 통화 녹취록과 메시지라는 물증 앞에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그는 2024년 8~11월 노조법 위반 재판 증인신문에 출석, "(녹취록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허 회장을 옹호하는 답변을 주로 했습니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허 회장이 민주노총 집회·시위에 강경한 입장이다', '허 회장이 민주노총 문제로 황 전 대표를 혼냈다', '허 회장은 이상한 할아버지다. 감방에 갔다 와야 한다'는 취지의 통화 녹취록이 제시됐음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검찰이 메시지를 제시하며 '''V1'이 허영인 회장을 가리키는 것이 맞느냐"라고 추궁했지만, "잘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심지어 A씨는 '허 회장 관련 검찰 진술은 다 경험한 게 아니라 과장에 불과한 것이냐'라는 검찰 측 질문에 "그렇다"고 했습니다. 허 회장에게 불리했던 종전 검찰 진술을 전면 번복한 겁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허 회장은 임직원들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며, 개인의 사리사욕은 결코 챙기지 않는다"며 허 회장을 두둔했습니다. 결국 검찰이 "알고 있는데 모른다고 말하는 것도 위증"이라며 "왜 자꾸 거짓말하느냐"라고 지적했을 정도입니다.
황 전 대표가 허 회장의 지시를 인정한 상황에서 A씨마저 불리한 증언을 할 경우 재판 판세는 허 회장에게 더욱 불리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허 회장 측이 A씨에게 거액의 고문료를 지급해서라도 불리한 진술을 막으려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은 "지회는 회사의 노조 파괴 행위 이후 지금까지도 그 피해를 온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노조 탄압 행위에 적극 가담했던 인물이 구체적 역할조차 불분명한 고문 직책을 맡아 억대 연봉을 받고 있는 건 SPC그룹이 과거 잘못에 대해 아무런 반성과 책임을 보이지 않는 걸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회사가 재판 과정에서 허 회장에게 유리한 진술을 확보하기 위해 A씨에게 위증을 교사하거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걸로 보인다"며 "앞으로 신문이 예정된 핵심 증인들에 대해서도 진술을 번복하면 '보상'을 약속하는 모양새로 비춰질까 매우 우려스럽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뉴스토마토>는 SPC그룹과 A씨에게 제기된 의혹에 대한 입장과 반론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SPC그룹 관계자는 "계열사 근무는 사실과 다르다"며 "퇴임 임원에 대해선 통상적으로 비상근 고문 대우를 하고 있다. 재판과는 무관한 퇴임 절차"라고 해명했습니다. 다만 모든 퇴임 임원이 비상근 고문 대우를 받는지, 징역형을 받은 임원이 고문 대우를 받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선 답하지 않았습니다.
A씨는 "(회사가 정말 위증을 교사하려고 했거나 증인을 관리하려고 했다면) 본사로 부르지 않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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