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잠수함사령부에 정박된 3000톤(t)급 잠수함 1번함 ‘도산안창호함’ 뒤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핵추진잠수함 사업의 안정적인 추진을 위한 특별계정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특별계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도 과제로 떠오릅니다. 핵추진잠수함 사업은 단순히 대형 함정을 건조하는 사업이 아니라 원자로와 핵연료 관련 기술, 선체와 전투 체계, 육상시험시설, 핵심 기자재, 안전 규제, 국제 협상, 승조원 양성 등이 동시에 진행되는 복합 국가사업입니다. 따라서 예산도 하나의 부처나 하나의 회계에 몰아넣는 방식보다는 '하나의 국가 목표, 여러 부처의 책임'이라는 원칙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단일 국가전략사업 번호 부여해야
22일 전문가들은 우선 특별법을 통해 핵추진잠수함 사업 전체에 하나의 국가전략사업 번호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현재처럼 국방부, 방위사업청, 해군, 연구기관, 원자력 관련 기관 등이 각각 별도의 사업으로 예산을 편성하면 개별 사업의 집행 여부는 확인할 수 있지만 전체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됐고 어느 분야에서 예산 공백이 발생했는지는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한국형 핵추진잠수함(K-SSN) 국가전략사업'이라는 상위 프로그램을 두고 그 아래에 함정 설계·건조, 원자로 기술개발, 핵연료 관련 기술, 육상시험시설, 핵심 기자재 국산화, 안전 규제, 인력 양성 등의 세부 사업을 두는 방식으로 부처별 예산 편성권은 유지하되 총사업비와 핵심 일정은 하나로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기적인 재정 계획도 필요합니다. 핵추진잠수함 사업을 정권 임기와 연간 예산편성 주기에 맞춰 관리해서는 장기적인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10년 단위 기본계획과 5년 단위 시행계획을 수립하도록 특별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10년 단위 기본계획에는 총사업비와 부처별 부담액, 연도별 소요 예산, 주요 기술개발 일정, 육상원형시험시설 구축, 시제함 착공·진수·취역 목표 등을 담을 수 있습니다. 다만 재정 여건과 기술개발 결과, 국제 환경 변화에 따라 사업계획을 수정할 필요도 있기 때문에 장기 계획을 법률로 정한다고 해도 정부가 10~20년간 모든 예산을 무조건 집행하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따라서 계획을 변경할 때는 변경 사유와 총사업비에 미치는 영향, 진수·취역 일정에 미치는 영향을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통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0년 전체 사업을 하나의 계속비로 묶는 것은 재정 운용 측면에서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계속비 제도의 단계적 적용이 필요합니다. 대신 원자로 및 육상시험시설 개발, 상세설계, 시제함 건조, 시험평가, 후속함 건조 등 주요 단계별로 계속비를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합니다.
각 단계의 총사업비와 연도별 지출 계획을 국회가 의결하면 정부는 해당 단계의 사업을 보다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습니다. 연구기관과 조선소 역시 단년도 예산에 맞춰 인력과 시설을 늘렸다가 줄이는 대신 장기적인 연구개발과 생산 계획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연구개발 예산은 다부처 공동사업화를 해야 합니다. 원자로, 열교환기, 터빈, 펌프, 소음·진동 저감기술, 고내구성 소재 등은 원자력·기계·조선·에너지 산업과 연결되는 등 핵추진잠수함의 핵심기술 상당수는 특정 군의 독점적인 기술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방사청은 작전요구성능과 탑재 조건을 제시하고 관련 과학기술 부처는 원자로 등 필요한 기술개발을 지원하며, 산업 분야에서는 핵심 기자재의 국산화와 생산기반 구축을 담당하는 식의 역할 분담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하면 핵추진잠수함 예산을 단순한 무기체계 획득 비용이 아니라 국가 첨단기술 투자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안전 규제의 독립성도 필요합니다. 핵추진잠수함은 군사기밀과 원자력 안전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사업을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는 이유로 안전 규제가 개발 기관에 종속돼서는 안 됩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규제 기관이 특별계정에 참여하더라도 개발 기관이나 사업 추진 기관으로부터 독립된 예산과 권한을 확보해야 합니다. 원자로 제작과 시험, 방사선 관리, 안전 기준, 사고 조사 등에 대한 규제 권한과 국회 보고 체계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국방부가 핵추진잠수함 개발 계획과 함께 공개한 카드뉴스. (사진=국방부)
범정부 조정기구 구성해 일정·예산 조정
범정부 조정 체계와 국회의 통제 장치도 마련돼야 합니다. 핵추진잠수함 사업은 국방, 과학기술, 산업, 외교, 원자력 안전 등 여러 분야가 동시에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청와대 또는 이에 준하는 범정부 조정 기구가 전체 사업의 일정과 예산을 조정해야 합니다.
아울러 특정 기관에 모든 권한을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별 책임과 조정 권한을 명확히 해서 부처별 사업이 서로 다른 일정으로 진행되면서 핵심 공정에 예산 공백이 발생하는 것을 막는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해 국회가 총사업비와 주요 사업 단계를 심사하고 정부가 매년 예산 편성액과 집행률, 사업 진도, 총사업비 변동, 주요 계약 현황 등을 보고하게 하는 통제 체계도 필수적입니다. 특별계정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정부가 장기간 예산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특별계정은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이지, 정부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백지수표'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같은 필요성과 통제 장치에도 불구하고 재정당국 입장에서는 기존 국방예산과 별도의 대규모 계정을 만드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국가재정 전체의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하고, 특정 사업에 장기간 재원을 묶어두는 것이 다른 국가사업의 재정 운용을 제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특별계정 논의는 '얼마를 더 달라'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사업을 어떤 기준으로 장기간 관리할 것인가'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핵추진잠수함에 필요한 재원을 무조건 별도로 떼어놓는 것이 아니라 총사업비를 객관적으로 산정하고 단계별 성과와 비용을 검증하면서 다음 단계의 예산을 결정하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특히 기술개발 단계에서 예상했던 비용과 실제 개발비가 크게 달라질 경우 이를 자동으로 보전하는 방식은 경계해야 합니다. 사업 단계별 원가 검증과 성과평가를 거쳐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조건부 계속성'이 필요합니다.
예산 안정성·재정 통제 동시 확보
결국 핵추진잠수함 특별계정의 핵심은 '예산의 안정성'과 '재정의 통제'를 동시에 확보하는 데 있습니다. 안정성이 없으면 20년 사업이 정권이나 예산 환경 변화에 흔들릴 수 있고, 반대로 통제가 없으면 특별계정이 거대한 장기 재정사업을 사실상 자동 연장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특별법에는 사업의 핵심 일정과 필요한 재원을 장기적으로 보장하되, 단계별 성과와 비용에 대해서는 국회와 정부가 지속적으로 검증하는 두 가지 원칙을 함께 담아야 합니다.
핵추진잠수함은 해군이 필요로 하는 하나의 무기체계이면서 동시에 원자력·조선·방산·과학기술·외교·안전 규제가 결합된 국가전략사업입니다. 2030년대 중반 진수를 목표로 한다면 지금부터 최소 10년 이상의 안정적인 재정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핵추진잠수함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설계에서 기술개발, 시험시설 구축, 건조, 시험평가, 승조원 양성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에서 예산이 끊기지 않도록 하면서도, 국민과 국회가 그 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라며 "'핵잠 국가전략 특별계정' 논의도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ston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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