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이 건조중인 장보고-Ⅲ 배치-Ⅱ 2번함 ‘서희함’이 시운전하고 있다. (사진=한화오션)
[뉴스토마토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정부가 내년도 국방예산에 핵추진잠수함 사업 예산 966억원을 편성하면서 한국의 핵추진잠수함(K-SSN) 건조 사업이 본격적인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정부는 2030년대 중반 핵추진잠수함 진수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입니다.
사업이 구체적인 예산으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크지만, 향후 15~20년에 걸쳐 추진될 국가 전략 사업을 매년 국방예산을 확보하는 방식으로만 끌고 가는 것이 적절한지를 놓고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일반 함정과 성격부터 다른 핵잠…예산 '지속적 투입' 불가피
21일 업계에 따르면 핵추진잠수함은 일반적인 함정 건조 사업과 성격부터 다릅니다. 선체와 전투체계뿐 아니라 잠수함용 원자로와 핵연료, 육상원형시험시설, 관련 기자재와 운용 기술, 안전 규제 체계, 국제 협상, 전문 인력 양성 등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는 겁니다. 사업 기간도 짧게는 10여년, 전체적으로는 15~20년 이상의 장기 프로젝트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국방 당국에 따르면 내년도 핵추진잠수함 관련 예산은 설계 계약금 440억원, 자산 취득비 413억원, 연구개발 장비 시스템 구축비 86억원, 시설비 10억원 등 모두 966억원입니다. 이는 핵추진잠수함 전체 사업에서 보면 시작 단계에 필요한 일부 예산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원자로와 핵연료 관련 기술개발, 육상시험시설 구축, 함정 설계와 건조, 전투 체계 통합, 시험평가, 안전 규제, 승조원 교육과 훈련 등에 막대한 재원이 지속적으로 투입돼야 합니다.
문제는 이 같은 장기 사업을 기존 국방예산 체계 안에서 매년 별도로 심사받는 방식으로 추진할 경우 사업의 연속성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국방예산은 기본적으로 한정된 재원을 육·해·공군과 각 전력 분야에 배분하는 구조입니다. 특정 사업에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면 다른 사업의 일정이나 물량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핵추진잠수함처럼 단기간에 성과가 나타나기 어렵고 초기 투자 규모가 큰 사업은 매년 예산편성 과정에서 다른 전력사업과 경쟁해야 합니다.
실제 한국의 과거 대형 전략무기체계 사업에서도 정권 교체와 정책 우선순위 변화가 사업의 지속 여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노무현정부 시절 추진됐던 핵추진잠수함사업 이른바 '362사업'은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됩니다. 이후 문재인정부에서 추진된 경항공모함 사업 역시 정권과 정부의 정책적 판단, 예산편성 방향에 따라 사업의 추진 동력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과거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특정 사업의 필요성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장기 국방 사업이 정치적·재정적 환경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핵추진잠수함도 마찬가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사업 초기에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필요성이 강조되더라도 5년, 10년 뒤 국방 환경과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가 달라지면 예산편성 과정에서 사업 규모와 일정이 재검토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핵추진잠수함은 일반적인 함정과 달리 한 단계의 투자가 중단될 경우 다음 단계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원자로 관련 기술개발이나 육상시험시설 구축이 늦어지면 함정 설계와 건조 일정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반대로 선체 건조 일정만 앞당긴다고 해서 사업 전체가 진행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핵추진잠수함을 기존의 개별 무기체계 사업과 다른 방식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월26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서 열린 '제1회 미래국방전략위원회'에서 핵추진잠수함 기본 계획 발표를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특별법 이어 '핵잠 특별계정' 당위성 급부상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핵심은 '핵추진잠수함 사업을 어떻게 하면 국방예산에서 더 많이 확보할 것인가'가 아니라 '15~20년에 걸친 국가 전략 사업의 재정적 연속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특별법과 함께 '핵추진잠수함 국가전략 특별계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특별계정은 단순히 기존 국방예산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방식이어서는 안 되고, 육·해·공군의 기존 필수 전력증강 사업을 잠식하지 않으면서 핵추진잠수함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별도의 재정 틀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게 문 교수의 설명입니다.
문 교수는 핵추진잠수함 사업에 국가 전략 사업 번호를 부여하는 방법도 제안했습니다. 현재처럼 선체 건조, 원자로, 연구개발, 시설, 안전규제 등이 각각 다른 부처와 기관의 사업으로 관리되면 전체 사업비와 일정, 예산 공백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문 교수는 "'K-SSN 국가전략사업'과 같은 상위 프로그램 아래에 선체 건조, 원자로 개발, 핵연료 관련 기술, 기자재 국산화, 육상시험시설, 국제 협상, 안전 규제, 인력 양성 등의 세부 사업을 묶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부처별 예산 편성은 유지하되 국가 차원의 총사업비와 일정은 하나의 틀 안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장기 재정 계획도 필요합니다. 최소 10년 단위의 기본 계획과 5년 단위의 시행 계획을 수립해 총사업비와 연도별 소요 예산, 핵심 기술 개발 일정, 시험시설 구축, 시제함 건조와 진수·취역 일정을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업을 한꺼번에 20년간 계속비로 묶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대신 원자로 및 육상시험시설 개발, 상세설계, 시제함 건조, 시험평가, 후속함 건조 등 단계별로 사업을 나누고 각 단계의 총액과 연도별 투자 계획을 국회가 심의·의결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매년 예산 심의 때마다 사업의 존폐를 원점에서 논의하는 것을 줄이면서도 국회의 재정 통제권은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핵추진잠수함 사업이 일반 무기체계와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국방 분야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원자로와 핵연료 관련 기술은 원자력 분야이고, 핵심 기자재는 기계·조선·에너지 산업과 연결됩니다. 안전 규제는 독립적인 규제기관의 영역이고, 국제 협상은 외교·안보 영역과 맞물립니다.
따라서 안정적인 예산 확보와 함께 부처 간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는 통합적인 관리 체계가 필요합니다. 특별계정의 목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특정 사업에 돈을 몰아주는 것이 아니라 장기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하나의 국가계획 아래 관리하고, 정권 교체나 연례 예산심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급격한 변동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핵추진잠수함은 어느 한 정부의 임기 안에 완성될 사업이 아니다"라며 "설계와 기술개발에서 건조와 시험평가, 승조원 양성까지 수많은 단계가 연결된 20년 안팎의 프로젝트"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지금 필요한 것은 첫해 예산 966억원을 확보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10년 뒤와 15년 뒤에도 사업이 같은 국가적 목표 아래 계속될 수 있는 재정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라고 부연했습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핵추진잠수함 사업의 성공 여부는 결국 얼마나 많은 예산을 투입하느냐뿐 아니라, 그 예산을 얼마나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투입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ston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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