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자운대에 건립될 국군사관학교 예상 조감도. (사진=국방부)
미국의 사관학교는 오랜 전통과 엄격한 교육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장교를 배출해 온, 아이비리그급 명문 군 교육기관이다. 그런데 미국 의회와 군, 연구기관, 현역 및 예비역 장교들은 수십 년째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군별 사관학교 교육이 다영역작전(Multi-Domain Operations·MDO) 시대에 맞는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길러 낸 장교들이 실제 전장에서 요구되는 합동적 사고와 협업 능력을 갖추고 나오는가. 사관학교를 통합하거나, 다른 ROTC와 결합하거나, 심지어 사관학교를 폐지하는 방안까지 공개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산업사회에서 아날로그 시대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갈 때마다 시장의 문법은 바뀐다. 코닥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하고도 필름 사업의 성공에 묶여 몰락했고, 노키아 역시 휴대전화 시장의 강자였지만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도태됐다. 두 기업의 실패는 인재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과거의 성공을 만든 구조와 관성을 새로운 환경에 맞게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도 다르지 않다. 전쟁방식이 바뀌었는데 장교를 길러 내는 방식이 그대로라면, 아무리 훌륭한 전통과 인재를 갖고 있어도 미래 전투력을 보장하기 어렵다.
과거에는 육군·해군·공군이 서로 다른 축구 경기장에서 각자의 공을 가지고 싸웠다면, 지금은 하나의 경기장에서 니공 내공 구분없이 서로 섞여 싸워야 한다. 적의 목표가 지상에 있든 바다에 있든 하늘에 있든, 영역의 구분 없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타격하는 것이 생존과 승리의 조건이 됐다. 그러려면 각 군의 장교들이 같은 전략과 전술을 이해하고, 함께 훈련해야 한다.
좀 더 군사적으로 말하면 지상부대가 확보한 정보가 해상과 공중의 타격으로 이어지고, 우주 기반 통신·항법과 사이버 방호, 전자기 환경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다. 인공지능은 이 모든 영역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융합하고, 유·무인 복합체계는 인간과 기계의 역할 경계까지 바꾸고 있다.
이것이 21세기 전장의 현실이다. 육·해·공·우주·사이버·전자기 영역이 하나의 작전 공간에서 연결된다. 이제 장교는 자기 군의 무기와 교리만 알아서는 임무를 완수하기 어렵다. 다른 군의 능력과 제약을 이해하고, 같은 상황을 같은 용어로 판단하며, 실시간으로 임무를 넘겨받고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군 간의 간극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전투력의 공백이며, 전쟁의 패배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다.
미국이 이 문제를 뼈아프게 깨달은 계기는 전쟁터에서 벌어진 실패였다. 1980년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 구출을 시도한 ‘독수리 발톱 작전’에서 미국은 각 군을 하나의 전력으로 묶을 지휘체계와 절차, 상호운용성을 갖추지 못했다. 결국 해군 헬기와 공군 수송기가 충돌하는 등 혼란속에서 작전은 실패했다.
1983년 그레나다 작전에서는 육군과 해군의 통신체계가 제대로 호환되지 않아 공중전화를 이용해 연락했다는 일화까지 나왔다. 각 군이 아무리 강력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어도 그것을 하나의 군사적 효과로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강군이라고 할 수 없다.
미국 의회는 이런 문제를 더 이상 군 내부에만 맡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가 1986년 국회가 주도한 골드워터-니콜스 국방개혁법이다. 이 법은 합동전투사령관 중심으로 지휘체계를 재편하고, 합동전문군사교육(JPME)을 제도화했다.
그러나 이토록 강력한 합동성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임관 전 4년의 생도 교육만큼은 여전히 군별 사관학교 체제로 남겨두었다. 여기에는 의원들의 생도 추천권, 강력한 동문 네트워크, 각 군의 이해관계가 결합하면서 사관학교 자체를 통합하는 문제는 정치적으로 건드리기 어려운 영역이 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결국 소령·중령급 장교가 합동교육을 받고, 합동 보직을 거쳐야 진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생도 단계의 공백을 보완하려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미군의 작전 실패와 전쟁 수행의 균열 밑바닥에는 각 군의 강한 군종 이기주의와 치열한 경쟁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기 군의 임무와 권한을 지키는 일이 국가 전체의 전투효과보다 앞서게 되면, 합동작전은 구호에 머물고 만다. 장비가 연결되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 더 근본적인 장애가 되는 것이다.
골드워터-니콜스 개혁은 바로 이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였다. 지휘체계와 교육제도를 고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고, 각 군의 이해관계를 넘어 합동작전의 성과를 중심에 두는 지휘문화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군종 이기주의는 법 하나로 사라지지 않는다. 장교가 처음부터 자기 군의 울타리 안에서만 성장하고, 다른 군을 경쟁자로 인식하도록 교육받는다면, 훗날 합동교육과 합동보직을 부여해도 오래된 조직 본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생도 시절의 공백을 임관 뒤 교육과 보직으로 보완하는 방식은 충분했을까.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 이어진 보고서와 논쟁은 그 답이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992년 미국 회계감사원(GAO)은 사관학교 정원을 줄이고 민간대학에 위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1995년 미 국방대학교(NDU) 논문집에는 통합사관학교를 신설하거나 생도들을 처음부터 함께 교육하는 ‘Joint From Day One’ 구상이 제안됐다. 1997년 의회조사국은 일반대학 졸업자를 선발하여 1~2년간 군사교육만 시키거나, 사관학교의 통폐합 또는 폐지까지 의회가 검토하도록 했다.
미 해군사관학교에서 30여 년간 생도를 가르친 브루스 플레밍 교수는 2009년 <워싱턴포스트>에 사관학교를 폐지하고 ROTC를 확대하자고 공개적으로 주장해 미군부와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논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4년 미 합참 연구팀은 초급장교들이 이미 합동작전을 수행하고 있는데도 교육체계가 그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미 합참은 2020년 장교교육과 인재관리 비전에서 합동성을 중견·고급 장교 과정에만 맡겨서는 안 되며, 더 이른 단계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밝혔다.
RAND의 2021년 연구는 2020년 기준 합동 직위에 배치된 중령·대령 가운데 합동전문군사교육 2단계를 이수한 비율이 40%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2024년에도 브루스 플레밍 교수는 또 사관학교의 폐쇄적인 학부교육을 비판하며 다른 장교 양성 경로와의 통합적 재설계를 요구했다. 2026년에 갱신된 미 의회조사국 자료 역시 각 군 중심의 4년제 사관학교 교육이 미래 국방전략에 부합하는 장교를 길러 내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정책 쟁점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 논쟁들이 보여주는 문제의 핵심은 임관 뒤 합동교육과 합동보직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생도 시절부터 형성된 군별 소속감과 경쟁 본능을 완전히 바꾸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국이 당장 사관학교 통합을 추진하지는 않지만,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미국의 사관학교조차 교육의 출발점을 다시 묻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작전 실패는 지휘체계를 바꾸게 했고, 수십 년간의 제도 운영과 비용·성과 검증은 사관학교의 존립 방식과 교육 시기를 다시 묻고 있다.
합동성, 효과적 출발은 생도시절 교육
한국도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 합동성은 임관 뒤 보직과 교육으로 사후 보완할 수 있지만, 가장 효과적인 출발점은 생도 시절이다. 다른 군을 협력해야 할 전우로 이해할지, 경쟁해야 할 조직으로 인식할지는 장교가 처음 어떤 환경에서 교육받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 군 내부에도 각 군의 이해관계를 국가 전체의 전투력보다 앞세우는 군 이기주의가 적지 않다. 특히 특정 군 중심의 조직 운영과 국방 운영이 과도하게 주도되거나 전횡으로 인식될 때, 다른 군과의 불신과 내부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갈등은 단순히 조직문화의 불편함으로 끝나지 않는다. 작전 우선순위와 전력 건설, 예산과 인사, 지휘체계에까지 영향을 미쳐 합동성을 약화시킨다.
문제의 뿌리는 생도 시절부터 시작된다. 현행 사관학교가 각 군의 전문성을 가르친다지만, 그 과정에서 각 군의 배타적 정체성까지 함께 강화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나는 어느 군 사람인가'라는 의식이 '나는 합동전력 장교인가'라는 의식보다 먼저 자리 잡으면, 임관 뒤에도 다른 군은 협력해야 할 전우이기 전에 경쟁해야 할 조직으로 보일 것이다. 군별 전문성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배타성과 결합하는 순간 전문성은 합동작전의 자산이 아니라 장벽이 된다.
현대의 다영역작전(MDO)은 여러 군의 전력을 단순히 한 작전계획에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다. 지상·해상·공중·우주·사이버·전자기 영역의 전력을 하나의 목표와 시간표 아래 통합하고, 상황에 따라 주도권을 신속하게 넘겨주는 작전 방식이다. MDO가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장교들은 임관한 뒤 합동성 교육보다 생도 시절부터 다른 군의 언어와 능력, 한계를 이해하고 함께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합동 정체성을 먼저 형성하고 군별 전문성을 그 위에 쌓는 교육체계가 필요한 이유다.
한국의 사관학교 통합 논의도 ‘어느 학교를 없앨 것인가’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 핵심 질문은 하나다. 미래 전장에서 살아남고 승리할 장교에게 임관 전부터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답은 각군 구별없이 합동성의 토양을 갖추는 것이다. 육군 장교는 지상작전의 전문가여야 하고, 해군 장교는 해양작전의 전문가여야 하며, 공군 장교는 항공·우주작전의 전문가여야 한다. 다만 그 전문성이 다른 군의 능력과 연결될 때 비로소 전투력이 된다는 사실을 생도교육의 출발점에서부터 체득하게 해야 한다.
따라서 합동사관학교는 선발과 기초교육, 리더십과 군사학의 공통 영역을 통합하고, 생도시절부터 합동성 관점으로 같은 문제를 풀고 반복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생도 단계에서부터 합동 임무의 성과를 평가하고, 어느 군의 전력이 더 큰가가 아니라 어떤 조합이 국가의 작전목표를 달성하는가를 배우게 해야 한다. 이후 군별 병과·무기체계·전문전술 교육은 각 군 또는 전문기관에서 더 깊이 있게 이어갈 수 있다. 통합은 획일화가 아니며, 공동교육은 전문성의 약화가 아니다. 오히려 공통의 언어와 신뢰, 그리고 합동 정체성을 먼저 갖춰야 각 군의 전문성이 전장에서 제대로 결합된다.
사관학교의 전통은 보존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전통은 박물관에 보관하는 유물이 아니라 국가를 지키는 방식으로 이어져야 한다. 전장이 달라졌는데도 과거의 양성체계를 지키는 것을 전통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전통이 아니라 관성이다.
미국마저 사관학교 통합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현대전쟁의 양상이 바뀌었고, 군종 이기주의와 조직 간 경쟁이 합동작전의 속도와 효과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전쟁은 더 이상 한 군이 단독으로 수행하는 영역별 대결이 아니다. 정보·통신·우주·사이버·전자기·인공지능·무인체계가 하나의 전장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합동전이다. 그런데 장교교육만 과거의 군별 칸막이에 머물러 있다면, 그 군대는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을 것이다.
미국은 1980년 작전 실패를 겪었고, 1986년 국방개혁법으로 지휘체계를 바꿨다. 그 뒤에도 수십 년 동안 합동교육의 출발점을 다시 묻고 있다. 우리는 그 논쟁을 지켜보면서도 사관학교 교육구조를 바꾸는 일은 뒤로 미뤄 왔다.
전쟁은 이미 합동인데 장교교육만 군별로 분리된 채 남아 있고, 각 군의 배타적 정체성과 경쟁심이 그 교육을 지배한다면, 그 간극은 언젠가 전장에서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사관학교 통합은 어느 군의 전통을 없애거나 전문성을 약화시키는 문제가 아니다. 합동 정체성을 먼저 세워 군 이기주의의 벽을 낮추고, 국가가 미래의 장교를 어떻게 길러 낼 것인지 결정하는 생존의 문제다.
미국도 합동사관학교 논의가 끊이지 않는다. 미국의 실패와 수십 년 논쟁을 우리가 40년 늦게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다음 전쟁에서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교육개혁의 비용보다 훨씬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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