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반도체, 자동차, 철강, 배터리 등 한국 주요 제조업 생산 거점의 미국 이동이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고율의 관세 등 미국의 통상정책 압박에 대응함과 동시에, 주력 수출 시장인 북미에서의 안정적인 생산 거점을 확보하는 등 공급망 재편을 통해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됩니다.
HPLS 부지에 걸린 대형 현수막. (사진=연합뉴스)
7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은 지난 4일(현지시각) 미 루이지애나주 어센션 패리시 도널드슨빌에서 ‘현대제철-포스코 루이지애나 전기로 제철소’(HPLS) 기공식을 열고 본격적인 제철소 건설에 착수했습니다. HPLS는 연산 270만톤 규모의 미국 최초 전기로 기반 자동차강판 전문 제철소로, 오는 2029년 양산을 목표로 올해 4분기 착공될 예정입니다. 총 투자비는 58억달러(약 8조원)에 달하며, 지분 구조는 현대제철 50%, 포스코 20%, 현대차와 기아 각 15%로 구성됐습니다.
현대차(005380)와
포스코(005490)가 이 같은 제철소
‘동맹
’을 구축한 배경에는 미국 정부의 관세정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50%에 달하는 철강 관세의 압박을 돌파하기 위해 현지 공급망을 구축함과 동시에
, 대규모 투자에 따른 부담을 나누기 위한 목적입니다
. 특히 한국 제조업의 주력 수출 시장인 북미에서의 생산 거점을 강화해 글로벌 업체들과의 추가 공급 계약 등의 공급망을 재편하겠다는 노림수도 깔렸습니다
.
현대차는 HLPS를 통해 철강부터 완성차, 더 나아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까지 현지 조달 체계를 구축하는 등 현지 공급망을 강화하고, 탄소저감 철강재를 바탕으로 글로벌 업계로까지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다른 완성차업체들도 (HPLS 철강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들에게도 철강을 생산해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실제로 일부 업체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포스코 역시 협력을 통한 현지 생산 기반 확대로 통상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한편, 미국 완성차업계 등으로 공급망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현대제철에 따르면 HLPS에서 생산된 철강재는 현대차·기아 미국 공장에 각 40만톤씩 공급이 확정돼 있고 포스코도 60만톤의 판매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연 270만톤의 철강재 판매가 실현되면 약 40억달러의 매출이 예상됩니다.
대미 수출 증가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반도체업계도 미국 현지 생산 거점 구축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 SK하이닉스(000660)는 지난달
28일 미 인디애나주에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
(HBM) 어드밴스드 패키징 공장
(팹
) 기공식을 열고
HBM 현지 생산 거점 구축을 본격화했습니다
. 인디애나 팹은
SK하이닉스가
4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에 건설하는 첫 생산기지로 오는
2028년
10월 클린룸
(패키징이 이뤄지는 공간
)을 완공해
2029년 하반기부터
HBM 양산을 목표로 합니다
. 이곳에서는 연간 수십만 장 분량의
HBM이 생산될 계획입니다
.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있는 SK하이닉스 반도체 팹 공사 현장.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005930)도 이미 미국 텍사스 주 테일러에 파운드리
(반도체 위탁생산
) 공장을 건설 중이며
, 올해 말 두번째 파운드리 공장
(테일러 팹
2) 착공을 준비하는 등 미국 내 생산 기반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 같은 현지화 전략이 ‘자국 생산’을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압박과 무관하지 않다는 시선이 우세합니다. 여기에 미국 내 생산능력을 확대해 엔비디아, 구글, 메타 등 현지 빅테크 업체의 핵심 공급망으로 자리 잡고 시장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적 판단도 작용한 결과로 풀이됩니다.
배터리업계도 중국산 공습과 전기차 캐즘
(일시적 수요 정체
) 등으로 인한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에너지저장장치
(ESS)를 중심으로 한 미국 생산 거점 확대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 LG에너지솔루션(373220)·
삼성SDI(006400)·
SK(034730)온 등
K-배터리
3사는 인공지능
(AI) 데이터센터 확대 등으로 대규모
ESS 수요가 늘면서 북미 생산 거점을 확대하거나 기존 전기차 배터리 생산 라인을 전환하는 등 북미 시장 거점 마련에 집중하는 양상입니다
.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대미 투자 압박이 앞으로 더 세질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국내 사업 여건과 원가 절감 차원 등 기업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현지 생산 거점 구축을 서두르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면서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로 현지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해 글로벌 기업과의 시너지 효과 도모 등 긍정적인 부분은 분명 존재하지만, 고용 유발 계수가 낮은 반도체 등 산업계의 미국 중심 현지화 전략은 국내에 고용 위축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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