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백겸 기자] 배달라이더와 택배기사 등 프리랜서, 특수고용노동자 등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안건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됐지만 결국 불발됐습니다. 이에 양대 노총 등 노동계는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의 적정임금 보장 문제를 사실상 방관했다"며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지난 1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5차 전원회의에서 류기정 사용자 위원과 류기섭 근로자 위원 등이 나란히 앉아 있다. (사진=뉴시스)
12일 최저임금위와 노동계 등에 따르면, 최저임금위는 지난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5차 전원회의를 열고 특수고용노동자 등 도급제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여부를 표결에 부쳤지만, △찬성 11표 △반대 15표 △무효 1표로 부결됐습니다. 최저임금위는 노동계·경영계·공익위원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도급제는 일의 성과·물량 등을 기준으로 보수를 받는 근로 형태를 말합니다. 택배·배달기사, 대리운전기사, 학습지 교사 등 프리랜서, 특수고용노동자가 여기에 속합니다. 현행법상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근로자성'을 인정받아야 하지만, 이들은 법상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어 최저임금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왔습니다.
그동안 노동계는 기본권 보장과 저임금 구조 완화 등을 이유로 도급제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을 강력히 주장해왔으나, 경영계의 반대에 부딪혀 매번 무산됐습니다.
특히 올해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위에 "도급제 임금 근로자에 대해 최저임금을 따로 정할지 여부를 검토해달라"고 공식 요청함에 따라 정식 안건으로 채택되면서 노동계의 기대감이 높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3차 전원회의부터 5차 전원회의까지 세 차례에 걸친 집중 논의에도 불구하고, 노사 간의 첨예한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했습니다.
앞서 민주노총은 지난 4일 열린 3차 전원회의에서 발표한 '도급노동자 최저임금 도입방안'을 통해 택배·배송 노동자의 시간당 기본급을 1만7468원으로 산정한 바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도급제 근로자의 총수익에서 유류비 등 업무 필수 비용과 4대 보험 부담분을 차감해야 하므로, 시간당 기본급은 법정 최저임금보다 높게 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지난 9일 열린 4차 전원회의에선 한국노총이 '도급제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의 실질적 적용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영국의 공정단가 사례를 참고해 배달라이더, 택배노동자 등 도급제 직종에 맞는 최저임금 산정 방식을 제안한 겁니다. 한국노총은 이를 통해 '순수익이 법정 최저임금 이상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습니다. 민주노총과 같은 취지의 주장인 겁니다.
반면 경영계는 도급제 근로자 상당수가 개인사업자라는 점을 들어 최저임금 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아울러 최저임금 적용 범위를 확대할 경우 소상공인 등의 인건비 부담이 한층 가중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노사 간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11일 표결 절차를 밟았으나 부결되면서, 도급제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논의는 내년도 과제로 미뤄지게 됐습니다.
이에 양대 노총은 일제히 실망감을 표출했습니다. 민주노총은 12일 성명을 내고 "이번 결정은 노동법의 보호 사각지대에 놓인 870만 특고·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의 생존권을 국가가 외면한 중대한 후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재명정부는 플랫폼 노동자 보호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했으나, 정작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의 적정임금 보장 문제 앞에서는 사실상 방관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날을 세웠습니다.
민주노총은 오는 16일 노동부 앞에서 규탄 결의대회를 열고, 27일엔 '최저임금 대폭 인상 쟁취' 결의대회를, 다음달 15일엔 총파업 등을 열어 최저임금 투쟁을 이어갈 방침입니다.
한국노총도 이날 성명을 통해 "저임금 취약노동자 보호라는 최저임금 제도의 본래 취지를 외면한 이번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노동시장 양극화를 완화하고 사회안전망을 확대해야 할 최저임금위의 책무를 저버린 실망스러운 결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당사자인 플랫폼노동자들도 성명을 발표하고 "우리의 요구는 (배달) 한 건을 달리면 최소한 이만큼은 받는다는 약속 하나 정해 달라는 것"이라며 "바닥이 없으니 단가는 해마다 내려가고, 내려간 만큼 더 오래, 더 빨리 달린다. 그렇게 도로에서 사람이 죽는다"고 성토했습니다.
한편, 6차 전원회의는 오는 16일 오후 3시에 열릴 예정입니다. 다음 회의에선 경영계가 주장하는 업종별 구분 적용 여부가 논의될 예정입니다.
업종별 구분 적용 논의 이후에는 노사 양측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경영계는 동결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320원으로 전년보다 2.9%(290원) 인상됐습니다.
김백겸 기자 kb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