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전 세계의 시선이 베이징에서 떠날 줄을 모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년6개월 만의 중국 방문을 마친 직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러시아 정상이 같은 달 중국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 정도로, 매우 이례적인 장면입니다. 트럼프식 일방주의에 맞서는 중국 중심의 개발도상국 연대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푸틴 대통령의 중국행은 이번이 25번째였습니다.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은 43번째로 성사가 됐는데요. '중러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구축 30주년이자 '중러 선린우호협력조약' 체결 25주년을 기념해 이뤄진 이번 만남은 모든 면에서 직전에 열렸던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비교가 됐습니다. 누구를 더 예우했는가, 누구와 더 친밀한 모습을 보였는가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지요.
첫 번째 비교 대상은 두 정상에 대한 공항 영접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정 중국 국가부주석이, 푸틴 대통령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각각 맞이했기 때문인데요. 행정부의 직책상으로는 한정 부주석이 장관급인 왕이 부장보다 높지만, 왕이 부장은 중국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실세입니다. 또한 중국공산당 내의 지위로 보면, 한정 부주석은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물러난 원로에 해당하지만, 왕이 부장은 24명의 정치국원에 포함되는 현역입니다.
중국 <인민일보> 21일자 1면 모습.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주요 일정을 상세히 담았다. (사진=인민일보 PDF 캡처)
푸틴 대통령은 방중 이튿날 오전 인민대회당에서의 환영식을 시작으로 소인수 회담, 확대 정상회담 등 총 3시간여의 정상회담을 진행했습니다. 이후에는 공동성명 발표와 공동 언론 브리핑이 순차로 이어졌는데요. 135분간의 정상회담의 결과가 서면 브리핑으로 갈음됐던 미중 정상회담과 비교해 보다 상세하게 회담의 내용들이 공유됐습니다.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전통 시 구절들을 인용해 러시아와의 관계가 보다 돈독하고 상호 신뢰가 나아질 것임을 강조했는데요. 양국은 '전면적 전략 협조의 진일보한 상화와 선린우호협력 심화에 관한 공동성명'을 통해 통상, 교육, 과학기술 등 영역에서의 협력을 약속함과 동시에 '세계 다극화와 신형 국제관계 제창의 공동성명'으로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규탄하는 등 미국 중심의 글로벌 패권주의에 대항함을 명확히 했습니다.
두 정상은 "일본이 재군사화를 가속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최근 일본의 군사적 움직임을 비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시진핑 주석은 이와 관련한 내용을 언급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전해졌는데요. 중국과 러시아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실질적 준수를 촉구"한다면서 일본의 독자적인 핵 보유 시도에도 반대의 뜻을 밝혔습니다.
아울러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평화적 해결을 위한 중재의 노력을 지속할 것임을 밝히며 사실상 러시아에 힘을 실어주는 듯 했는데요. 러시아도 이에 화답하듯 '하나의 중국' 원칙을 전폭 지지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는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중국으로 공급하는 핵심 루트 '시베리아의 힘-2' 가스관 프로젝트를 비롯한 에너지 안보 협력 강화에도 공감대를 표했는데요. 미국 등 서방의 금융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위안화와 루블화 결제를 더욱 활성화하는 데에도 뜻을 모았습니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자원과 중국의 거대한 시장을 묶어 미국의 경제 제재 면역 체계를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정상회담을 마친 푸틴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중러 교육의 해' 개막식을 둘러본 뒤 인민대회당에서의 차담과 만찬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뒤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이튿날 중국 권력의 심장부인 중난하이에서 시진핑 주석과 차담과 업무 오찬까지 함께한 후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푸틴 떠나고 이번엔 파키스탄 총리
푸틴은 오는 11월 또 한 번 중국을 찾을 예정입니다.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참석하기로 한 것인데요. 만약 트럼프 대통령도 이때 중국을 찾는다면, 트럼프와 푸틴의 만남이 중국에서 성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푸틴 대통령의 다음으로는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가 베이징에 도착했습니다. 샤리프 총리는 중국과 파키스탄의 수교 75주년을 기념해 국빈 방문에 응한 것인데요.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재개된 가운데, 앞선 종전회담을 중재했던 파키스탄 지도자의 방중으로 세계는 또 한 번 중국의 영향력을 확인하게 됐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셰리프 총리와의 회담에서 "파키스탄이 주도적으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중동 지역 평화 회복을 위해 중재 역할을 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는데요. 샤리프 총리도 "중국이 파키스탄의 협상 중재를 지지해 준 것에 감사한다"면서 "중국과 긴밀히 조율해 세계 평화와 안정 촉진을 위해 공동으로 기여하길 희망한다"며 파키스탄의 행보에 중국의 입김이 있었음을 우회적으로 시사했습니다.
한편, 시진핑 주석이 이달 안에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날지에도 관심이 모아집니다. 시진핑 주석의 방북 전망에 중국 외교부는 "중국과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로 좋은 친구이자 가까운 이웃"이라면서 "현재로서는 공유할 정보가 없다"고 반복해서 언급했습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