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림프종'으로 사망한 삼성전기 노동자, 첫 산재 인정
법원, 노동환경 살펴 근로복지공단 결정 '뒤집어'
유족 "사망 5년이 넘어 인정돼 …공단, 항소 않길"
2026-05-27 11:49:31 2026-05-27 11:56:17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삼성전기에서 20년 가까이 전자기기 부품을 만들다 악성림프종으로 사망한 40대 노동자가 법원에서 산업재해를 인정받았습니다. 삼성전기 노동자 중 림프종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사진=뉴시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호성호)는 지난 8일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노동자 박모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습니다. 
 
박씨는 2000년 7월 삼성전기에 입사해 스마트폰이나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미세한 전자 부품을 생산하거나 제조 장비를 유지·보수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박씨의 몸에 이상 반응이 생긴 건 2019년 6월입니다. 무릎 부위가 부어오르더니 그해 12월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 진단을 받은 겁니다. 항암 치료를 이어가던 박씨는 2021년 2월 사망했습니다. 
 
박씨 배우자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유족급여를 청구했습니다. 고인이 삼성전기에서 일하면서 톨루엔·크실렌 등 각종 유기용제와 전리방사선에 노출돼 림프종이 발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상병 원인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이고, 방사선 노출도 제한적이었을 것'이라면서 불승인으로 처분했습니다. 유족은 이에 불복해 이 사건 소를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유족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고인이 이 사건 사업장에서 장기간 근무하면서 노출된 유해물질, 유해요소가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해 이 사건 상병이 발병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이번 판결은 전문가들의 소극적 의견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재판 과정에서 직업환경연구원은 '고인의 유해물질 노출 정도가 낮다'고 했고, 감정의는 '고인의 업무가 림프종에 영향을 줬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반면 재판부는 박씨의 노동환경을 꼼꼼히 살펴 의학적·과학적 증명을 넘어 규범적 판단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고인이 수행한 원재료 투입 및 교반 작업에서 유기용제의 증기가 직접 비산되고, 교반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로 유기용제의 휘발 속도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며 “고인이 유해물질을 포함한 원재료에 근접해 작업하면서 일반적으로 대기 중에 비산하는 양보다 더 높은 농도의 화학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설령 직업환경연구원이 추정한 유해물질 노출수준이 노출기준의 범위 안에 있다고 해도 장기간 노출될 경우 건강상 장애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고,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는 경우에는 유해요소들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질병 발생의 위험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유족을 대리한 이성영 변호사는 “법원은 의학적·자연과학적 관점이 아니라 규범적 관점에서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제반 사정을 종합해 업무와 질병 간 인과관계를 판단했다”며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인정 기준이 법원과 달라 재해 노동자와 가족들에게 그 피해가 돌아가고 있는 만큼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습니다. 
 
유족은 이번 선고 이후 “남편은 림프종 이전부터 남성 불임 진단을 받았다. 남편은 죽기 직전까지 제게 아이를 남기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며 “남편이 죽은 지 5년이 넘어서야 산재 인정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한다면 사건은 더 길어질 텐데 부디 항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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