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희 기자] 압도적인 AI 경쟁력을 갖춘 중국 보험사에 맞서 한국 보험사들도 AI 전환(AX)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가 최근에서야 이뤄지며 뒤늦게 추격을 시작했는데요.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중국을 따라잡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입니다.
22일 개최된 고성능 AI 관련 금융권 보안위협 대응 간담회 현장. (사진=금융위원회)
AI 앞서나가는 중국 보험산업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핑안보험은 지난 2017년 AI를 활용한 '3분 초고속 현장 조사 시스템'을 출시했습니다. 이는 자동차 사고가 나면 AI가 사진과 영상을 분석해 견적을 내고 1시간 안에 수리까지 보험금 지급 과정을 초고속으로 진행하는 심사 시스템입니다.
핑안보험은 회사 전체 서비스의 80% 이상을 AI가 담당한다고 알려졌습니다. 또 중국의 빅테크 기업 텐센트는 AI 자동화를 통해 '피스 오브 마인트 클레임' 플랫폼에서 연계 보험사로부터 보험금 지급을 단 6초 만에 끝마치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핑안보험 뿐만 아니라 중국 대부분 보험사는 대형언어모델(LLM)을 도입했습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보험사 60% 이상이 LLM에 기반한 서비스를 도입해 운영 중입니다.
LLM은 기존 AI보다 한 단계 진화한 기술로,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스스로 이해하고 생성할 수 있습니다. 보험 업무 특성상 보험 약관이나 계약서, 청구서류 등 비정형적이고 반구조화된 텍스트가 많고 고객 응대나 상담 등 언어 기반 응용이 가능해 LLM이 보험 산업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업계에서는 보험산업의 AI 도입에서 중국이 유리한 입장을 점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의 금융사는 내부 업무망과 외부 인터넷망을 분리해 해킹 위험을 낮추는 '망분리 규제'를 받고 있어 최신 상용화된 LLM을 직접 연동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중국도 망분리 규제가 있지만, 이는 개별 회사 차원이 아닌 국가 차원의 망분리에 해당해 보험사들이 LLM을 사용하는 데 제약이 없습니다. 쉽게 말해 중국 보험사는 다른 기업이 개발한 AI 솔루션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AI 오류인 '할루시네이션(환각)'을 줄이려면 지속적인 데이터 플랫폼의 업데이트가 요구되는데 중국 보험사들은 한국의 개별 금융사 입장에서 투입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아끼는 셈입니다.
데이터 확보 측면도 차이가 있습니다. 핑안보험의 사례처럼 AI를 활용한 초고속 현장 조사가 가능하려면 AI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많은 학습이 요구됩니다. 업계에서는 중국 보험사가 CCTV 등을 통한 데이터 확보가 용이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한국 보험사의 경우 고객이 제출한 데이터에만 기반하다 보니 AI를 활용한 OCR기술(이미지에서 텍스트를 추출하는 기술)이 중국보다는 더딘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보험사도 AX 가속화
한국 보험업계에서도 AX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산업별 AI 활용 기업 비중에서 금융권이 63%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는데요. 보험사들은 △사내 업무지원 △판매 △언더라이팅(보험가입심사) △보험금 청구 및 지급 △고객관리 등 다양한 측면에서 AI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DB생명은 최근 업계 최초로 인공지능 기반 헬스케어 플랫폼에 대화형 'AI 건강코칭 서비스'를 선보이며 헬스케어 시장 공략에 나섰습니다. DB손해보험 역시 AI 에이전트를 도입해 보험금 접수부터 지급까지 전 과정에서 AI와 대화를 통해 맞춤형 응답을 제공받는 시스템을 적용해 운영 중입니다.
실제 현장 영업에서의 성과도 데이터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한화생명이 업계 최초로 생성형 AI를 활용해 개발한 'AI STS(보장 분석 및 상품 제안 시스템)'의 경우 해당 시스템을 사용한 설계사의 건강보험 판매 실적이 미사용자 대비 40% 높게 나타났습니다.
재보험사인 코리안리는 지난 3월 국내 최초로 보험 요율 산정 AI를 도입해 현업에 활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외에도 △교보생명 △삼성화재 △신한라이프 △현대해상 △NH농협생명 △iM라이프 등 많은 보험사에서 보험 설계와 사기탐지 고도화 등 다방면에서 AI 기술을 활용하며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망분리 규제로 인한 병목과 실제 현장 적용까지의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보험산업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으로 꼽혀 소비자 보호 등을 이유로 AI 활용이 제한되기 쉽습니다.
전날 개최된 보험연구원의 '보험산업의 AI 활용에 따른 기회와 위협' 산학세미나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이 지적됐습니다. 망분리 규제로 최신 LLM을 사용할 수 없고 폐쇄망 내 별도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해 시간과 비용 부담이 크다는 지적입니다. AI 기술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것에 반해 금융사의 망분리와 데이터 활용 제약으로 최신 모델 도입에 병목 현상을 낳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영업 업무를 돕는 데 있어 AI를 활용하는 움직임이 크고 보험료 산출이나 인수, 지급 심사에서도 AI를 많이 사용한다"면서도 "다만 흔히 소비자가 생각하는 생성형 AI보다는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2일 '고성능 AI 관련 금융권 보안위협 대응 간담회'를 열고 망분리 규제 완화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총자산과 일정 인력 규모를 충족한 금융사의 보안 목적 AI 활용 시 1년간 망분리 규제를 완화하고, 고도의 보안역량과 AI 활용능력을 갖춘 금융사의 경우 망분리 규제를 전면 해제하는 방안도 검토한다는 방침입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AI를 도입해서 사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요율 산출 등 AI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데이터 정밀성과 AI의 접근성이 잘 마련돼야 한다"며 "금융권 공동의 AI 인프라가 마련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28일 개최된 보험연구원 산학 세미나 '보험산업의 AI 활용에 따른 기회와 위협' (사진=배희 기자)
배희 기자 SheisH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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